상단여백
HOME 문화 책/출판
<인터뷰> 김인육 시인 "나이 들지 않은 詩 쓰고파"
  • 진정은
  • 승인 2018.05.28 13:24
  • 댓글 0
▶ 김인육 시인

 

2016년 겨울, 벼락처럼 나타난 시 한 편이 대중의 가슴을 흔들었다. tvN 드라마 <찬란하고 쓸쓸하神, 도깨비>에 삽입된 ‘사랑의 물리학’이다.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사랑의 물리학> 전문)

극중 도깨비 김신은 시를 읊으며 지은탁에 대한 감정을 인지한다. 900년 만에 처음 사랑을 깨달은 도깨비의 감정선을 완벽하게 채운 시 한편. 대중들은 열렬히 환호했고, 출판업계도 덩달아 들썩였다.

‘사랑의 물리학’을 쓴 김인육 시인(55), 그에게 시 열풍은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였다. 하지만 시는 ‘어느 날 갑자기’ 써진 것이 아니다. 시인의 교복 바지가 짧아져 복숭아뼈가 훤히 들어나던 그때, 파도처럼 다가온 제비꽃 같은 아이, 대학교 복도에서 슬로우 모션으로 다가온 꽃잎 같은 아이까지. 시인의 인생에서 사랑이라는 찰라가 전부 함축되어 시 ‘사랑의 물리학’이 탄생했다.

 31년 차 국어 선생님이자 18년 차 시인인 김인육 작가. 그의 말에 따르면 시는 짝사랑이다. 시인은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이 들지 않는, 생동하는 시를 쓰고 싶다"고 전한다.  지상의 모든 색이 짙어진 봄비 내린 5월, 양천고등학교에서 김인육 시인(55)을 만났다.

 

 

“11년의 시간을 건너 

 시가 더 큰 질량으로 대중의 맘 속에 자리잡아”

 

 - 본인의 시가 동시대 독자에게 열렬히 사랑 받는 것, 시인에게 참 행복한 일이죠.

 그렇죠. 드라마가 방영된 2016년 연말 연시를 참 행복하게 보냈어요. 졸업한 제자, 학부모에게 축하 메시지도 많이 받았고요. 쓰여진 지 11년 남짓한 시가 긴 시간을 지나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다니 신기할 따름이었죠.

 

 - 당시 작가님이 느낀 주위 반응은 어땠는지.

 시가 삽입된 영상이 금요일에 방송됐는데 그 다음 날부터 반응이 엄청 난 거에요. 주말 내내 지인들에게서 연락 오고. 월요일에 출근하니까 학생들도 난리가 나고(웃음). ‘사랑의 물리학’이 2012년 <잘가라, 여우>라는 시집에 실렸거든요. 해당 출판사에서 “기존의 시집 제목을 <사랑의 물리학>으로 바꿔 내보자”고 해서 바로 개정판이 나왔죠. 3일 만에 참 많은 일이 있어났어요.

 

  -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나요? 

 전혀요. 정말 놀랬어요. 저는 애초에 시가 드라마에 삽입되는 사실도 몰랐었고. 졸업한 학생이 갑자기 전화해서 대뜸 “선생님, 도깨비라는 드라마 아세요?”하고 묻는 거에요. “그게 무슨 도깨비 같은 소리냐?고 되물었죠(웃음). “그 드라마에 선생님 시가 나온다”는 제자의 말을 듣고 좀 알아봤어요. tvN이라는 채널에서 새롭게 하는 드라마였고,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에 티저 영상이 공개됐는데 거기에 제 시가 몇 초 나왔던 거죠.

 

- 시가 드라마 안에서 큰 역할을 했어요. 주인공 도깨비의 감정을 대변하는 장치였으니까.

 티저 영상을 보고 ‘내 시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니까 일단 방송을 보자’는 마음이었죠. 막상 드라마를 보니 시가 한 회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할 정도로 비중이 있더군요. 사전에, 드라마 방영 이후에도 출판사나 방송사 측의 연락이 없어 의아했죠. ‘연락 한 통 없는 것은 아니다’ 싶었고(웃음). 알고 봤더니 출판사와 드라마 제작진 사이에서 책 활용에 대한 입장이 달라서 벌어진 일이었어요. 미리 협의된 사항이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 미디어의 영향력을 실감했을 것 같은데요.

 ‘사랑의 물리학’은 2007년 문예지에 공개적으로 처음 발표됐어요. 서울시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걸렸는데 그때도 좀 반응이 있었고. 그 다음 제 시집 <잘가라, 여우>와 필사책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에 실려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던 작품이에요. 그런데 이 모든 활동, 기간을 합친 것보다 더 강한 반응이었어요. 5분간 미디어 노출이 이렇게 영향력이 있구나, 이래서 미디어 세대라는 말이 나오는구나, 싶었죠.

  

- 이쯤 되니 궁금해요. ‘사랑의 물리학’은 어떻게 탄생 했나요. 

 학교 쉬는 시간에 떠오른 시에요. 40대 중반 무렵에 지었죠. 하지만 40대의 사랑을 이야기한 건 아니고. 사람은 살면서 여러 번 사랑을 하게 되잖아요? 저는 20대에 겪었던 사랑이 사랑이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지 않나 생각해요. 그래서 그때의 감정을 시에 녹이려고 했죠.

  

▶ 김인육 시인

 

- 그래서인지 시에서 사랑에 서툰 청년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드라마 속 도깨비도 900년 넘도록 사랑을 느끼지 못하다 처음 사랑을 느끼는 캐릭터라 더 어울렸던 것 같고.

 맞아요. 가슴 속에 무언가가 순식간에 밀려들고, 사정 없이 쿵쿵대는,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는 마음. 사랑이라는 단어에 가장 가까운 감정을 지녔던 20대 초반의 정서가 담겨있죠.

 

- 혹 시 창작에 영향을 준 특정 인물이 있나요?

 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에요. 나에게도 많은 사랑이 왔는데, 그 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의 공통 분모를 추적해서 시적으로 형상화했어요. 첫사랑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풋사랑부터 결혼에 이르는 사랑까지 다 포함해서요. 나를 설레게 했던 순간, 심장을 두드렸던 느낌을 다 합친 거죠.

 

- ‘사랑의 물리학’은 작가님의 다른 작품과는 사뭇 달라요.

 ‘사랑의 물리학’은 제 시 중에서도 좀 특이한 작품이죠. 다른 시들은 거의 대부분 어둡고, 슬프니까. 사랑의 물리학은 밝고 활기차거든요. 제 작품은 아픔과 상처가 많은 편이에요.

 

 

사랑의 성취 아닌 사랑의 불발, 

상실에서 오는 감정이 작품 세계의 주된 정서”

 

- 작가님 작품 전반에 담겨있는 아픔과 상처, 그 정서의 시작은 무엇인가요? 

 제 시를 보면 누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내가 일곱 살이었을 때 세상을 떠난 누이. 수업 시간에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가르치다 ‘나에게도 망매가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월명사의 감정과 믹스해 현대판으로 만들어보자’는 마음에 <다시 부르는 제망매가>라는 첫 시집을 냈죠. 누이의 사랑 연대기로 한 편의 소설 같은 작품이에요. 사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문학 작품은 아픔과 상처를 담고 있어요. 시, 소설, 희곡 장르를 막론하고. 작품을 이끄는 중심이 사랑의 성취가 아니라 사랑의 불발에서 오는 비극, 그것에 가깝죠.

 

- <다시 부르는 제망매가>는 작가님께 정말 특별하겠어요.

 ‘사랑의 물리학’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어떤 시인에게든 첫 작품이 소중할 거에요. <다시 부르는 제망매가>는 저를 등단시킨 작품이기도 하고요. 어린 시절 받았던 충격과 슬픔, 상실감을 시로 달랬기에 더 애틋하죠. 또 누나에게 마음으로 바친 작품이기도 하고.

 

- 시에서 누이를 비롯한 가족 이야기가 다수에요. 

 문학이 가진 가치의 중심은 감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는 진정성, 진솔함이고요. 이게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청년 작가 시절, 제 시작(詩作)의 시작(始作)은 가족이었어요. 여섯 명의 누이 아래 외아들로 태어나 너무도 큰 사랑을 받았거든요. 특히 어머니가 저를 끔찍히도 아끼셨어요. 당신 세상의 중심은 아들이었으니까. 받은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에 내 영혼의 베이스는 어머니고, 심지어 영혼조차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에요. 그러다 보니 가족 이야기가 작품의 주를 이루게 되었고, 또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진솔함을 갖출 수 있었죠.

 

- 문학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가는 누군가요. 

 고등학교 때 부산에서 홀로 자취를 했어요. 넓은 곳에서 더 많이 배우라는 가족의 뜻이었죠. 그런데 혼자 있으니 얼마나 허전해요. 그때 찾아온 게 풋사랑이었어요. 당시 펜팔이 유행이었어요. 서울신림여중의 한 학생과 펜팔을 하게 됐는데. 그 친구는 정말 특별했어요. 부산 학생에게 서울은 늘 한 번 가보고 싶은 미지의 공간이었거든요. 그 펜팔 소녀가 사는 서울은 그리움의 대상이었고. 말하자면 다른 별에 사는 아이였죠. 당시 그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는 게 가장 큰 기쁨이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이었던 거에요. 죽음을 앞 둔 친구라서 그런 건지 생각의 차원이 달랐어요. 그 친구에 비하면 전 정말 철 없었고요. 여학생의 편지가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 자체로 그냥 시였어요. 가장 인상 깊은 문구, 지금도 기억하고 있죠.

   

** 년 6월 15일 외출

 오늘은 바람을 따라 외출을 했었다오 

……………………………..

내가 마지막으로 아끼는 것은 

 데미안과 어린왕자와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원한다면 다 주겠소. 나는 할말을 잃었다오.

 

 충격적인 거죠.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 이게 아마 마지막 편지였을 거에요. 밤새 읽고 또 읽고. 그 친구가 알려준 책을 청소년기 내내 읽었어요. 사실 제가 좋아하는 시인, 영향을 받은 전문 작가들은 참 많아요. 다들 대단하고 감탄할 만한 능력의 작가들이에요. 그런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아이가 제게 시인이었어요. 소설 같은 실제가 큰 영향을 미친 거죠.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 처음으로 시적 감성을 불러일으킨 대상이 펜팔 소녀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말랑말랑, 생동하는 시 쓰고 싶어”

 

- 집필 근황이 궁금해요.

 제가 큰 사랑을 받았던 2016년 겨울, 이듬해 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지상에서, 이 별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가 사라지는 아픔과 내 시가 열렬히 사랑 받는 상황이 겹치던 시기. 극과 극인 두 개의 상황을 겪으면서 독특한 멘탈붕괴를 겪었어요. 당시 창작은 거의 불가능했고, 한동안 멍하게 보냈죠.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좀 정신을 차렸네요. 이제 시를 지으려고요. 기존에 시적 세계는 가족 중심의 체험 위주였는데 소재가 고갈되기도 했고, 가족 이야기는 많이 등장해서 새로운 스토리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 김인육 시인

 

- 교사이면서 시인이에요. 시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교단에 선 지 31년 차에요. 시인으로 산 시간보다 교사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죠. 사실 완벽하게 시만 사랑하며 오롯이 시에 바친 삶은 아니에요. 살아오면서 제 삶의 중심은 학교였고, 학생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 다음으로 시가 있었죠. 시는 내가 좋아서 하는 것, 어찌 보면 짝사랑에 가까운데. 짝사랑이 긴 세월을 지나 용케도 제게 큰 사랑으로 돌아왔네요(웃음).

 

 - 앞으로의 집필 활동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보통 노시인의 시를 읽을 때 그것의 연륜과 완숙미가 있어요. 하지만 젊은 감성에서 느낄 수 있는 발랄함과 생동감이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해요. 우리가 태어날 때는 몸이 액체에 비유할 만큼 부드러웠잖아요. 몸에 수분도 많고요. 하지만 나이가 먹어가면서 몸에 수분이 빠져나가듯, 점점 딱딱해지고 고체화 되는데 감정도, 시도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육체를 따라서. 반면 젊은 시인의 시는 말랑말랑하고, 한지에 수묵화처럼 번짐이 있죠. 그런 게 좋은 시 같아요. 시인이 나이들 수록 시도 나이 먹고, 경화되는 듯한 경향이 있어요. 나도 어쩔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요. 나이를 먹어도 말랑말랑한 시를 쓰고 싶어요. 이 마음 잊지 않고, 잃지 않으려고요.

 

    
● 김인육

시인. 1963년 울산에서 태어나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1986년)하고,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2001년)했다. [시와생명]의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2000년)했고, 현재 계간 문예지 <미네르바>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서울 양천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다시 부르는 제망매가>, <사랑의 물리학>이 있다.  

진정은  biz99news@gmail.com

<저작권자 © 비즈99(BIZ99),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정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신생아화장품 ‘아토오겔’ 유아·아기수딩젤, 민감 피부를 위한 ‘저자극 제품’
신생아화장품 ‘아토오겔’ 유아·아기수딩젤, 민감 피부를 위한 ‘저자극 제품’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우녹스 오븐’ 활용 시니어 요리왕 선발대회 열어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우녹스 오븐’ 활용 시니어 요리왕 선발대회 열어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