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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상협 시인, ‘어떤 슬픔’을 노래하는 목소리
  • 진정은
  • 승인 2018.06.0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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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협 시인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이상협입니다."

자신을 아나운서라고 소개하는 이상협 작가(44). 아직은 시인이라는 호칭이 익숙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막 첫 시집을 냈고, '시인에 가까운 사람'으로 방금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잘 울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활자 사이로 몸을 숨기고, 흰 종이에 문장을 쓰는 것으로 울음을 대신했다고. 일상의 슬픔을 수집해 온 6년, 시가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시인의 품 안에서 숙성된 시의 맛은 어떨까? 삶의 물살을, 슬픔을 담담히 낭독하는 이상협 시인을 KBS 본관 시청자 광장에서 만났다.

 

등단 6년 만에 첫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 발간해

시인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시 쓰고파

 

“감정의 내력이
   지층처럼 쌓인 첫 시집”   

 

등단 후 6년 만에 첫 시집이 나왔어요. 소감이 궁금해요.
2012년 등단 시 KBS가 장기파업 중이었어요. 그때 기억이 많이 담긴 시집이죠. 파업했을 때 힘들고 외로운 투쟁을 이어갔는데. 6년 만에 나름 좋은 시절에 시집이 나오게 돼 감회가 새로워요.

6년 간 시인의 역사가 시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군요.
그럼요. 당시 프로그램도 하고 여행도 다녔는데. 그때 겪은 일들이 시 창작에 아주 많은 영향을 미쳤죠.

예를 든다면?
‘로드다큐 석굴암’을 촬영할 때 시를 여러 편 지었어요. 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프로그램인데. 그때 지은 시 10편 정도가 시집에 삽입됐어요. 미얀마 바간에서 스님을 인터뷰하는데, 서로 언어가 다르니까 중간에 통역가가 통역을 해주잖아요. 그런데 스님이 저희 쪽에 요구한 게 인터뷰할 때 눈을 보지 않는 거에요. 통역가가 말하기를 큰스님들은 눈을 안 본다고 해요. 그러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겠죠. 그래서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통역하기 전까지 저는 못 알아듣는 게 일반적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알아들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그때 언어 밖의 언어가 분명 존재한다는 걸 느꼈어요. 그걸 시로 쓴 게 ‘인터뷰’에요. 또 미얀마의 북한식당에서 냉면을 먹으며 쓰게 된 ‘다른 나라에서’라는 시도 있고요. ‘민무늬 시간’, ‘비대칭 행성’, ‘앵커’라는 시는 여의도 3부작이에요. 이 시는 직업인으로서, 아나운서로서, 언론인으로서의 비애를 담았죠.

시를 모으느라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군요.
아무래도 전업시인이 아니고 직장인이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제일 큰 이유는 제가 게을러서.(웃음)

주변 반응은 어때요?
<특집다큐, 원효 돌아보다>라는 프로그램을 석 달간 촬영하고, 지금 정신이 없는 상태라 시집 홍보를 제대로 못했어요. 고마운 분들께 시집도 드리고, 시인들 반응도 들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네요. 시집을 돌리면 반응이 나오겠죠?

시집 제목은 어떻게 정했는지.
김민정 시인이 제목을 잘 정하는데 감사하게도 먼저 제안해주었어요. 시집 제목을 정해주겠다고. 시 하나하나 보면 울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요. ‘오하이오 오키나와’도 그렇고. 저는 실제로 잘 못 우는데 그래서 울음에 집착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은 ‘저절로 하루’라는 시에 있는 문구인데. 울음과 울음 사이에 생활이 있고. 생활과 생활 사이에 울음이 있으니까, 그래서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인 거죠. 책 제목 참 마음에 들어요.

시집 제목은 어떻게 정했는지.
김민정 시인이 제목을 잘 정하는데 감사하게도 먼저 제안해주었어요. 시집 제목을 정해주겠다고. 시 하나하나 보면 울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요. ‘오하이오 오키나와’도 그렇고. 저는 실제로 잘 못 우는데 그래서 울음에 집착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은 ‘저절로 하루’라는 시에 있는 문구인데. 울음과 울음 사이에 생활이 있고. 생활과 생활 사이에 울음이 있으니까, 그래서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인 거죠. 책 제목 참 마음에 들어요.

시에서 '울음'이 많이 나온다고 하셨죠. 시집을 관통하는 핵심 정서가 궁금해요.
어떤 슬픔이에요, 이유를 알 수 있는 슬픔, 모르겠는 슬픔 그리고 슬픔은 대부분 울음을 동반하죠. 사람을 울음의 관점에서 나누어 본다면 앞으로 울 사람, 울었던 사람, 울고 싶은 사람, 울고 싶지만 못 우는 사람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모두 울고 난 얼굴인 셈이죠.

작품 한편 한편 다 소중하겠지만 '더 아픈 손가락'인 시가 있는지.
‘민무늬 시간’이 애착이 가요. 시라고 호명 할 수 있는 것을 썼다는 느낌을 처음 받은 시입니다. 이걸 기준으로 쓰면 되겠다 싶었죠. 매사가 그렇겠지만 ‘성공의 기억’은 중요합니다. 소위 말하는 ‘시감詩感’을 잡은 시입니다.

세상에는 곁에 두고 싶은 어여쁜 시도 있고, 사회 민낯을 드러내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시도 있죠. 작가님의 시는 어떤 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시집의 경향을 묻는 것이라면 애매한 것이, 첫 시집이다 보니 퀼트 같은 것이 되어 버렸어요. 다양한 시들이 6년이란 시간을 두고 지층처럼 쌓여있습니다. 이런 저런 성격의 시들이 모인 하나의 광장이랄까요. 다음 시집에서 쓰고 싶은 걸 미리 쓴 시도 있고, 또 어쩔 수 없이 털고 가야 하는 시들도 있습니다.

 

“무기력하던 시절 시로 치유해”


다재다능한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음반을 낸 적도 있다고.
그게 사실 오해에요.(웃음) 원래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게 됐고요. 그런데 음악이 밥벌이가 안 될 것 같은 거에요. 베이스캠프를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죠. 학교방송국에서 아나운서를 한 경험이 있어서 아나운서를 직업으로 삼게 됐어요.

시는 어떻게 쓰게 됐는지 궁금해요.
예전부터 시처럼 짧은 글을 좋아했어요. 어느 순간 시를 많이 읽게 됐죠. 2008년에 ‘8·8’사태가 일어났어요. 사법경찰들이 방송국에 난입해 노조원을 연행해갔던 유례없는 사건인데. 이때 정신을 붙잡고 나를 치유할 게 필요했어요. 이번에는 시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시를 학원에서 배울 수는 없지만 답답한 마음에 김소연 시인의 문화원에 갔어요. 정말 좋은 시인을 만난 거죠. 그때 시 쓰는 방향을 잘 잡은 것 같아요. 계속 시를 쓰고 신춘문예에 내고, 등단까지 하게 됐네요.

 

▶이상협 시인


당시 힘들었던 마음이 시로 치유되었는지 궁금해요.
무언가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시기였어요. 술 많이 마시고 몸을 축내고 무기력하던 시절이었는데, 이렇게 살다간 망가지겠다 싶었어요. 뭐라도 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시가 보였죠. 그리고 등단하기까지 시로 인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 고통 속에서 다른 고통이 많이 덜어졌다면, 변종의 치유일지도 모르겠네요.

가장 위로가 된, 마음을 다독였던 작품이 있는지.
대학 졸업하고, 취직 못하고 놀 때 잠깐 어학원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노랑, 초록 조끼입고 학생들이 버린 쓰레기를 줍고 다니는데. 그때 왜 그랬는지 저녁 밥을 굶고 시집을 산거죠. 장석남의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었어요. 시를 읽던 시절이 아니라, 이해가 잘 안 되는데도 이상하게 좋은 거에요. 장석남 시만 늘 읽고 다녔어요. 아마 이병률 시인의 <바람의 사생활>과 더불어 가장 많이 데리고 여행한 시집일 거에요.

시 쓸 때 ‘이런 건 하지 말아야지’ 혹은 ‘이렇게 해야 해’라고 스스로 약속한 게 있는지.
시에 거짓말 하지 않기. 판타지 안에서도 진심, 진실이 있어야 하죠. 나를 속이고 그럴 듯하게 만들어진 문장은 의미가 없어요. 하나 더 있다면 무리하게 꾸며서 억지로 만들지 않기. 그런 시는 괴물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니까요.

보통 착상이 떠오르면 어떻게 하나요?
아이폰 메모장에 스케치하는 느낌으로 적어둬요. 프로그램 촬영하러 이동할 때 기차나 버스 안에서 단상이 떠오르면 입력해두죠. 기본적으로 그를 많이 묵히는 편이에요.

메모장에 간단히 적어둔 후, 시를 완성하는 특정 장소가 있는지.
회사요. 사무실만큼 좋은 공간이 없어요. 시를 자주 고치는 편이고, 무조건 뽑아서 실물로 봐야 하는 성격인데, 무료로 프린터를 사용할 수 있는데다 적당히 고요하고 적당히 시끄러운 곳이라. 시 쓰기에 최적화된 공간입니다.

 

 “시인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시 쓸 차례”

      
라디오 DJ를 하면서 청취자와 소통하시죠. 그러면 시인으로서 소통도 욕심날 것 같은데. 독자와의 소통 계획이 있는지.
유희경 시인의 시집 전문 서점인 ‘위트앤 시니컬’에서 6월에 낭독회를 할거에요. 사람이 안 오면 서점 입장에선 손해라 좀 부담이 되긴 하는데, 어디서든 꼭 할거에요. 일반 낭독회와는 조금 다른 방식일 거구요. 또 Yes24 에서 하는 팟캐스트 ‘오은의 옹기종기’에 참여해 시집을 소개할 예정이에요. 물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이상협 시인


첫 시집을 내면서 마음가짐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
시인, 하면 아직도 낯 간지러워요. 직함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직도 실감이 없는지 많이 낯선 호칭인데. 아직 진짜 시인이 못되어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첫 시집을 내고 이제 진짜 하나의 색을 지닌 시집을 낼 수 있겠다 싶어서 후련해요. 별로 아쉬운 맘은 없습니다. 이제 시인이란 이름으로 불릴 때 부끄럽지 않은 시들을 쓸 차례네요.

여태껏 그러했듯 시인의 삶이 시로 탄생할 텐데요. 앞으로 이상협 시인은 어떤 시를 쓸까요? 궁금합니다.
神에 관한 시요. 그 이상은 말씀 드리기 어렵네요. 흐릿하고 기쁘게 갈피를 잡아가는 중입니다.

작가의 첫 시집을 손에 든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시는 음악이에요. 소리 내 읽으세요. 악보를 눈으로 보고 음악을 상상하는 것은 음악이 아니듯, 연주하세요. 혼자서 혹은 함께 아무데나 펴서 소리 내 읽어보세요. 매직아이 북처럼 입체의 다른 이야기가 보이고 들릴 겁니다.

 

 

●이상협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2002년에 28기 공채 아나운서로 KBS에 입사했으며 현재 KBS 클래식FM '당신의 밤과 음악'을 진행하고 있다. 2012년 <현대문학>에 등단했으며, 최근에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을 출간했다.

 

진정은  biz99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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