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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이듬 시인, ‘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나’
  • 진정은
  • 승인 2018.06.1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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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이듬 시인

일산 호수공원의 한 책방. 문이 활짝 열린 이곳에 들어서니 ‘책방이듬’의 주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김이듬 시인(49)이다.

‘책방이듬’은 전 지역의 방문객이 찾을 만큼 핫한 책방 중 하나다. 다양한 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시민과 문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공간으로 서서히 자리잡아가는 이곳.

마냥 여유롭고 낭만적일 것 같은 이곳이 주인에게는 더없는 현실이었다. 매달 운영비와 씨름해야 하는 자영업자의 고충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시인. 그럼에도 시인과의 1시간 남짓한 대화 속 주제는 ‘시와 사람’이었다.

힘들어 하는 시인에게 선뜻 향긋한 과일을 선물하는 이, 아플 때 죽을 쑤어오는 이, “망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달라”고 응원하는 사람들. 다정한 손을 건네는 이들이 있어 시민은 절망 속에서도 명랑을 잃지 않고 책방을 지킨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시가 있어 두렵지 않다”고 고백하는 김이듬 시인과의 이야기를 전한다.

 

손님 고민 들어주고 책 추천하는 '책 처방' 진행해
주민과 호흡하며 달라진 자신 느껴
책방 운영 쉽지 않지만 시가 있어 두렵지 않아
시민과 문인 어우러지는 공간 됐으면

 

“사람, 인연을 생각하는 나날”

 

‘책방이듬’이 작년 가을에 문을 열었어요.
‘일산 호숫가에 책방이 있다더라’하고 소문은 많이 났어요.(웃음) 운영하기 녹록치 않았는데 올 봄을 기점으로 점점 좋아지고 있어 다행이에요.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죠.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나요?
대학 강사 일로 번 수입을 가게 월세, 관리비, 전기세 등으로 다 투입하고 있어요. 유지비용을 댄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라 맘고생도 많았죠.

정말 현실적인 이야기군요. 하지만 계기가 있어 이곳에 책방을 냈을 텐데.
해외 여행하면서 본 책방이 너무 좋았어요. 방에 있기 답답할 때 펜, 노트북만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카페요. 외국의 작은 동네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와서 몇 명 앉혀놓고 문학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말 멋진 거죠.

로망이 생겼군요.
예전부터 북카페를 갖고 싶었어요. 카페와 책이 결합된 문화공간으로 작가들이 와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이 좋겠다, 했죠. 차 한 잔 시켜 놓고 멍 때리고 있어도 눈치 안 주고 또 시끄럽지 않은 그런 곳. 막연히 상상했죠. 근데 결심은 아니고 “날개가 있으면 좋겠다”같은 허황된 생각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이곳에 정착해 책방을 운영하고 있네요.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생각하다 보면 운명인 것 같기도 하고.(웃음) 지금은 시 쓰는 일보다 책방 운영에 더 신경 쓰고 있어요.

사소하게 신경 쓸 일 많죠?
책방을 여유롭게 운영하는 건 정말 드라마 같은 일이더라고요. 몸이 안 좋아질 만큼 힘들어하니까 주변에서 회원제를 해보라고 권유했어요.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분이 많아서 매달 비용을 받고, 책방 이용 시 혜택을 제공하죠. 호응이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 150명 정도 책방 가족이 모였어요.

상황이 한결 나아졌겠어요.
정말 괜찮아졌어요. 책방 가족이 된 분들은 ‘책방이듬 망하지 말고 거기 있어라’하는 마음인거에요. 파리 유학 중인 사진작가, LA에 사는 의사 등 국내외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줘서 어떻게 갚아야하나 고민해요. 조만간 ‘페이퍼이듬’이라고 매거진을 만들 계획이에요. 등단, 비등단 상관없이 유명하든 안 유명하든 좋은 글을 받아서 책을 만들려고요. 출판사 등록도 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책방 가족에게 보내는 거죠. 거리가 멀어서 이곳까지 못 오는 분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선물이 될 수 있으니까.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책이네요.
시, 소설, 에세이 등 장르 가리지 않고 최고의 원고로 담을 거예요. 마지막 페이지에는 책방 가족의 이름을 꾹꾹 눌러 쓰는 거죠. 특별할 것 같아요. 200부 찍을 건데 품귀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해요.(웃음)

책방이듬 하면 ‘책 처방’으로 유명해요. 자연스럽게 이뤄진 거라고 들었는데.
무슨 책을 골라야 될지 모르겠다는 손님들에게 한두 권 책을 추천해드렸어요. 그러면서 이야기하게 된 경우가 많았죠. 작년에 책방을 개시하고 겨울쯤에 손님이 없었어요. 눈이 펑펑 오는 날이었는데. 한 남자 분과 대화를 하게 됐죠. 시집을 멀리하게 된 계기가 있어서 고등학생 때까지 시를 읽고 그 이후로 한 번도 안 읽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분에게 올라브 하우게의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를 추천했어요. 눈이 많이 오던 날이기도 하고. 작가가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에 살면서 자기 주변에 있는 사물을 관찰하고, 다정하게 써내려간 시집인데. 길이도 짧아요. 두려움 없이 시를 접근하기 좋은 시집이죠.

그렇게 ‘책 처방’을 시작하게 됐군요.
비슷한 일이 연거푸 생기면서 조금 더 전문적으로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비용을 받기 시작했고, 시간도 1시간으로 한정하고. 그렇게 올해 2월부터 제대로 하게 됐어요.

손님들 반응도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별로 이야기 안 해요. 하지만 여기를 찾는 분들은 마치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하거든요. ‘책 처방’이 끝나고 “홀가분해졌다” “힐링됐다”는 말을 꼭 들어요.

타인의 고민을 듣는 일이 쉬운 게 아닐 텐데.
대화를 나누고 나면 하루 종일 끙끙거리기도 해요. 초기에는 진이 빠질 정도로 힘을 많이 쏟았죠. 진심으로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쓰니까.

듣고 보니 정말 많은 일을 소화하는 것 같아요. 책방 운영과 창작활동이 균형적으로 잘 이뤄지는지 궁금해요.
일 년은 지나봐야겠지만 창작보다는 책방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도 바빠요.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커피 원두 주문하고. 낭독회 포스터도 제가 만들거든요. 디자인 작업, 작가 섭외도 해야 해요. 손님이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걱정이고. 손님이 오면 그분들과 이야기를 해야 될 때도 있고. 시 창작은 집중을 요하는데 할 일이 많으니 산만하죠.

시인으로 살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책방을 열기 전에는 시 쓰고 글 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줄 알았어요. 시 쓰다가 아버지에게 전화라도 오면 “나 지금 시 써요. 피를 찍어서 쓰는 중이니까 건드리지 말아요”라고 엄포를 놓을 정도였죠.(웃음) 그런데 책방을 열어보니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다르지 않더라고요. 피를 찍으며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을 대할 때 이전과는 달라졌다고 느끼고.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해요. 시인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원래 저는 삐딱하고 시니컬한 구석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지 같다고 할까? 대지가 싹을 틔우고 또 품어주잖아요. 크게 말하면 여성이 가지고 있는 모성애 같은 거죠. 어머니 같은 게 아니라 대지적인 거예요. 내가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 '책방이듬'과 김이듬 시인


시인 본인이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라면.
사람에 대한 배려요. 내가 뭔가 가지고 있으면 더 주고 싶고 그래요. 고구마를 삶거나 과일이 들어오면 손님들과 나눠 먹고. 좋은 작품을 읽었다면 손님들과 나누고 싶고. 시 쓰는 학생들이 자주 오거든요. 시중에 절판된 책은 여기서 필사해가는 친구도 있어요. 제가 외국 생활을 많이 해서 스파게티도 자주 해먹는데 시 쓰는 친구들이 있으면 꼭 같이 먹어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과거의 자신이 생각나서인지.
내가 왜 그러나 생각해봤는데. 내가 저 나이에 글 쓸 때 힘들었고 돈도 없었으니까 ‘도와주자’하는 생각이에요.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몇 달 간의 만남인데 마치 평생 만난 사이처럼. 그래서 요즘은 사람과 인연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돼요.

주민에게 ‘책방이듬’이 참 특별하겠어요.
주민과 주인이 경계가 없다고 해야 하나. 손님들이 더 주인 같아요. 제가 깜빡 잊고 손님에게 돈을 안 받으면 “왜 돈 안 받냐”고 챙겨주고 걱정도 많이 해주세요. 아플 때 죽을 써주시던 주민도 계셨어요. 본인들이 마신 음료잔을 설거지하고, 비가 들이닥치면 청소도 해주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참 많아요. 정말 고맙죠.

 

“내 시 속에는 자유가 있어”

 

작년에 낸 <표류하는 흑발>을 발간했어요. 그동안 정말 부지런히 시를 써왔는데.
그만큼 열심히 글만 쓰고 살았다고 생각해요. 시집 말고도 소설이 한 권, 에세이집은 두 권 나왔어요.

최근 시집에 대한 평가는 어떤지.
제 작품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려요. 영화도 무난하게 사랑받는 작품이 있는 반면, 좋다 싫다가 확 나뉘는 작품이 있잖아요. 제 시는 후자에요.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시를 못 읽겠다”고 하지만, 제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또 열렬히 좋아해요. 최근 시집은 공감하게 된다는 평이 많아요. 독자들 말이 “예전 시집에서는 엄청 센 언니였는데 좀 쉬워지고 공감하게 된다”고.

공감을 산다는 건 좋은 일이죠. 가장 최근에 쓴 시 중 ‘아쿠아리움’이 눈에 띄는데.
근처에 아쿠아리움에서 근무하는 청년이 있어요. 그 분이 책방을 방문하면서 아쿠아리움 이야기를 나누게 됐죠. 여기 책방이 두 면이 통유리로 돼 있잖아요. 지나가다 여기를 들여다보는 사람도 많고, 문을 슬쩍 열어보는 사람도 있고. 그럴 때 내가 이 안에 갇혀있는, 마치 유리 안에 갇힌 말 못하는 생물 같은 느낌인 거죠. 이 안에 고여 있는 생물 같다는 느낌을 적은 시예요.

다작하는 동시에 시집마다 변화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요.
맞아요. 평론가들 말로는 매 시집마다 변화가 있대요. 이건 좋은 말이거든요. 고여 있지 않는다는 의미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 감독만의 색이 있지만 매번 변화가 있는 것처럼요.

작가님 작품이 변화하지만 그 안에 항상 놓치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지 궁금해요. 늘 등장하는 대상이라든지, 어떤 감정이라든지.
음...자유인 것 같아요. 시 안에서 화자는 굉장히 자유로운 존재인 거죠. 작가 김이듬은 지금 이곳에 갇혀있지만 시 속의 그녀는 숲속을 걷고 있는 거죠. 자유로운 화자를 통해 폭력과 구속, 이데올로기의 억압으로부터 인간, 나의 친구 혹은 독자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요. 제 시에 들어있는 게 그런 거 아닐까요? 참, 대신 훈계나 삶의 가르침 그런 거는 별로 없어요.(웃음)

작가님 시가 다른 장르 작품으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방과 후 티타임 리턴즈’라는 독립영화에 제 시 ‘시골창녀’가 인용된 적이 있어요. 첫 시집 <별모양의 얼룩>에 실린 '봉인된 여자', '계단을 내려가는 암소', '후이족의 아내와 양의 끊어진 인터뷰' 등이 ‘변태(變態)’라는 희곡에 사용돼 연극으로도 나오기도 했죠. 그 작품이 연극대상을 받았다고 해요. 또 최근에는 <표류하는 흑발>에 실린 ‘나는 춤춘다’로 춤추는 영상을 만들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시 낭독 음원에 제 작품이 사용되기도 하고. 이런 경우가 꽤 많아요.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쓴 첫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에 백가흠 소설가의 한 마디가 실렸어요. 이분에 따르면 “오래전, 그녀의 시에서 소설을 읽은 적 있다… 압축되어 사물이 된 내면과 심리 위에, 파멸과 적멸, 시행과 시생 사이에서 퍼져 나오는 이야기 서사, 이는 시인의 시 안에 숨겨진 소설 전공법이었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에 소설을 써오고 있었다”라고 해요.

이런 평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평가를 읽고 “아 그런가?”했죠.(웃음) 내가 이렇게 생겨먹었고, 저절로 되는 거라서…. 영어권에서 제 작품이 번역되어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명랑하라 팜 파탈>이 미국 번역문학 전문 웹사이트 ‘쓰리 퍼센트’(Three Percent)의 ‘최우수 번역 도서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 해외에 나가서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동양적이면서도 글로벌한 상상력이 담겨있다고 해요. 시 속에 드라마가 있다는 평가도 받고요. 제 작품이 다른 장르로 확산되는 거니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일은 모르지만 두렵지 않아, 나에게는 시가 있으니까”

 

책방에서 직접 시 창작 교실도 열어요. 강의 제목이 ‘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나’인데.
맞아요. 시가 아니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저는 허무주의적인 실존주의자에요. 하루하루 실존하고 있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지내자’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여기니까 내일을 잘 몰라도 크게 두렵지 않아요. 나에게는 시가 있으니까.

 

  ▶ 김이듬 시인

멋지네요.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해요.
인생이 절대 계획처럼 안 되잖아요. 큰 계획은 없어요. 아, 조만간에 허수경 시인을 만날 거예요. 제게 소중한 사람이고 인연이 깊거든요.

‘책방이듬’이 어떤 책방이 됐으면 하는지.
박인환이라는 시인이 있어요. 1945년 말쯤 종로3가에 ‘마리서사’라는 책방을 열었는데. 이곳이 문학사 전설로 남은 서점이랄까. 이곳에는 제가 좋아하는 김수영 시인도 자주 드나들었죠. 예술가들이 찾아왔고 신간, 중고서적 등을 취급했죠. 박인환이라는 사람은 잊혔지만 한때 이런 시인이 있었고, 시인이 운영하는 책방에 누군가가 오고갔다더라 하는 기록만 있어요. ‘책방이듬’도 그런 곳이면 좋을 것 같아요.

“그곳에서 낭독회를 여러 차례 했고, 장르 가리지 않고 소설가, 시인 등 작가들이 찾아왔다.” “몇 년간은 망하지 않고 동네 주민과 문학과 예술을 나누면서 정답게 지냈다더라.” “그리고 그곳에서 어울리는 모습이 아름다웠다더라”하는. 그런 공간으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김이듬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경상대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계간『포에지』로 등단했다. 시집 『별 모양의 얼룩』『명랑하라 팜 파탈』『말할 수 없는 애인』『베를린, 달렘의 노래』『히스테리아』『표류하는 흑발』과 장편소설『블러드 시스터즈』, 산문집 『모든 국적의 친구』『디어 슬로베니아』등이 있다. 시와세계문학상, 22세기 시인상, 올해의시인상, 김달진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출강, <책방이듬> 의 대표를 맡고 있다.

진정은  biz99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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