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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소호 시인, 소호식 저항 혹은 고백
  • 진정은
  • 승인 2018.07.0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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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소호 시인

저항, 도발, 반격, 해방, 자유, 페미

고작 60분 남짓한 시간으로, 이소호 시인(30)을 이루는 단어 몇 개를 골라본다. 온통 불온하고 버릇없는 2음절 목록.  ‘소호사전’에 적힌 수많은 낱말 중 손끝이 멈춘 단어는 뜻밖에도 ‘위로’다.

시인은 ‘사적인 것이 가장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소리 없이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의 경험을 시에 담아내는 그녀. 자신의 아픔을 밤새 들여다보는 일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상처의 시화(詩化)는 세상을 향한 시인의 저항이자 폭로이며 고백인 것. 시 쓰기로 자신의 아픔을 덜어내는 시인은 자신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독자를 위로한다. 

첫 시집 열렬히 작업 중
내 시 남의 일기장 훔쳐보는 느낌이었으면
이소호 방식대로 계속 고백할 것

 

"첫 시집을 기다리며"

 

요즘 어떻게 지내요?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어요. 틈틈이 들어오는 원고 청탁이나 강의 제안 빼고는 남은 시간을 시 쓰기에 할애하고 있죠. 오로지 시만 썼던 기간이 그동안 없었거든요. 학교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느라 바빴죠.

지금은 온전히 시 창작만을 위한 시간이군요.
첫 시집을 내야겠다 싶었어요. 엄마와 약속한 게 있는데. 첫 시집이 나올 때까지, 딱 그 기간에는 다른 걸 하지 않고 시만 쓰겠다고요. 약속한 시간이 2년이고, 지금 6개월 남았네요.(웃음)

얼마 남지 않았네요. 시는 많이 썼나요?
음, 제가 농부스타일이에요. 막 뿌려놓고 몇 달 동안 안 써요. '뿌려놓는다'는 건 메모하고, 일기 써두는 걸 뜻해요. 오늘 기분을 적어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니까. 그렇게 써놓고 몇 달 동안 내버려 두고는 2주에 몰아서 스무 편 정도를 완성해요.

수확을 한 번에?
네, 그렇죠. 요새 수확철이라 밤새서 쓰고 있어요.

보통 시집 한 권에 시 50~60편 정도 들어가잖아요.
지금까지 한 60편 정도 썼어요. 첫 시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공 들여서 계속 쓰고 있고. 여기서 또 솎아내야죠. 시집은 내년에 투고할 계획이고 지금은 계속 쓰고만 있어요.

올해 말쯤 막바지 작업에 들어가겠네요. 시집 구성을 생각해본 적 있는지.
저는 항상 시를 쓸 때 시집이 하나의 전시실이라고 생각하면서 써요. '이 시는 어디에, 이 시는 어디에 있으면 좋겠다'라고. 시집은 전체적으로 세 파트로 이뤄질 것 같아요.

세 파트라면?
'경진이네' 가족시. 미술관 시리즈. 다음은 미투 운동과 비롯해 페미니즘적인 시요.

세 파트 이야기를 하나씩 해보면 좋겠네요. 우선 '경진이네' 가족시부터. '경진이네'라는 큰 카테고리 아래 연작 시가 많아요. 경진이는 누구인가요.
'경진'은 개명하기 전 제 이름이에요. 이 이름을 자주 쓰는 이유가 있어요. 경진이라는 이름을 썼을 때 독자들이 궁금해하죠. 자주 등장하는데 대체 누구일까? 하는. 또 평범하면서 남자, 여자 이름으로도 쓰여서 나 자신을 캐릭터화하기 아주 좋아요. 과거의 나이자 또 다른 나니까. 아, 오늘 고친 시에도 경진이가 등장해요.(웃음)

 

  ▶ 이소호 시인

이름을 바꾼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엄마의 강력 추천이었어요. 등단하는데 이름을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저도 원래 필명을 쓰려고 했고요. 개명신청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기다리는 중에 등단 소식을 받았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인 이소호로 살자고 마음 먹었어요.

왜 '소호'인가요? 특별한 뜻이 있는지.
부모님이 새로 지어주셨을 것 같지만 사실 친구들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다 같이 엑셀 파일을 만들어서 그동안 들어보았던 예쁜 이름들을 나열하고 거기서 저한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을 투표로 결정했어요.


“진실과 허구가 뒤섞인 시”


'시진'이라는 인물도 시에 자주 등장해요.
시진은 제 친동생 이름이에요. 저희가 연년생 자매인데. 스무 살부터 둘이서 한 집에서 살았어요. 싸우고 또 부부처럼 지내기도 하고 영향을 많이 주고 받죠. 물론 이름 공개는 동생의 허락 하에 이뤄졌고요.(웃음) 저는 주로 제 이야기를 많이 쓰기 때문에 경험담은 물론, 주변 인물들이 시에 자주 등장해요.

그래서인지 경험담인가 허구인가 헷갈리는 시가 많아요. '오빠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는 시가 특히 그래요.

뭘말하고싶어?아프면죽이나끓여먹지왜나한테전화해?나이제욕하는것도지쳐너욕하고싶은거참고있는거지그런거지뭐가두려워?나는내모든것을나눠줬는데넌만족할줄을몰라이래서난우울한여자는싫어야징징짜지말고똑바로말해…농담인데왜정색을하고그래전에도말했지만니가기쎄고예민해서우리연애까지불행해진거야다른남자였으면진작헤어졌겠다이번에도봐줬다내가다음부터그러지마정힘들면술마시고잠이나자…서운하게생각하지마연인사이에이런말도못해?우린이세상누구보다제일가까운사이잖아너생각하는건나뿐이야잊지마그러니까너오빠한테잘해
 <시 '오빠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

'오빠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는 전 남자친구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어요. (웃음) 어느 날 파일 하나를 찾았는데 남자친구가 제게 했던 말을 적어둔 내용이었어요. 과거의 제가 도움을 준 거죠. 연애할 때 언어폭력을 저지르는 남성이 있는데. 남성 독자가 남성이 연인에게 저지르는 언어 폭력을 보게 되면 어떨까? 깨닫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 만들었어요.

읽다 보면 하나의 인물이 그려져요. 한 번쯤 봤을 법한 무례한 캐릭터.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노력해요. 시 봤을 때 소호가 이런 일을 겪은 걸까? 아니면 허구일까? 이렇게 헷갈렸으면 좋겠어요. 진실과 허구가 뒤섞인. 그래서 남의 일기장 훔쳐보는 느낌이었으면 하는 거죠.

실제 경험담이었군요.
'너무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이의 탄생'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들었던 성차별적이면서 폭력적인 발언들이 사실은 일상적으로 다른 이에게도 일어나고 있으니까.

시가 고발의 역할을 하는 거군요.
그렇죠. 고발이면서 고백이기도 하죠. 믿고 따르던 지인이 있어요. 어느 날 이 사람이 성폭력 가해자인 걸 알게 됐죠. 충격이 정말 컸는데. 이 사건으로 쓰게 된 시가 '함께 세우는 교회'에요. 이 시가 저한테 미투 운동의 하나였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그렇죠. 예전부터 제 방식대로 폭로를 계속 해온 것 같아요. 주변에서 벌어지는 권력 내에서 이뤄지는 폭력에 대해. 아무도 들어주지 않지만. '들어주는 게 중요한가?' 요즘은 이 생각도 해요. 내 시를 통해서 또 다른 고백이 나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그저 한 명이라도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미투 운동, 성차별적 억압에 대한 저항 등. 페미니즘이라는 큰 범위 안에서 이야기되는 것들이에요.
아직 발표하지 않은 시들이 있는데. 성차별주의를 고발하는 이야기가 꽤 많아요. 책 한 권이 페미니즘으로 묶일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죠. 80년대를 산 시인이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하고, 세월호 사고가 있을 때 시인들이 세월호를 이야기하듯. 제가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해요.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지만 또 쉽게 발언하기 어려운 게 요즘 상황이죠.
다행인 것은 제가 예술가라는 거.(웃음) 사실 미술 작품을 볼 때마다 부러웠어요. 누드도 마음대로 그리고 텍스트를 얹혀서 "이것도 미술이야"라고 할 수 있고. 최근에는 페미니즘 미술, 여성주의 미술을 전시하니까요. 저도 이왕 하는 거 당당히 노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미술에 관심이 많나 봐요. 미술 관련한 연작시도 많고.
엄마의 영향이 커요. 어릴 때부터 공연, 예술을 경험하도록 해주셨거든요. 제일 미술과 가깝게 지냈던 적은 뉴욕으로 1년 동안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에요. 서점에 가도 읽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외로웠는데. 뉴욕에 미술관이 정말 많거든요. 그때 미술관을 많이 다녔어요. 어떤 작품은 언어만 펼쳐두고 미술이라고 하기도 하고. 이걸 나에게도 가져올 수 있겠다, 싶었죠. 미술과 나의 경험, 생각을 연결 지어 또 다른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

'경진 현대 미술관' 카테고리 안에서 시가 많이 발표되겠군요.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alle)이라는 아티스트가 있어요. 캔버스에 붙인 물감 주머니를 총으로 쏘는 '슈팅 페인팅'의 창시자인데.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비극적 삶을 예술에 녹여냈어요. 내 이야기와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버무려 어떻게 표현할지 구상 중이에요.

주로 다루는 내용이 불편하지만 마주해야 할 현실에 대한 거에요. 시를 쓰고 나면 기분이 어때요?
딱 10분 좋아요.(웃음) 그리고는 울적해요. 아팠던 일을 그대로 적은 일기를 매일매일 쳐다본다는 게 그렇죠. 엄마는 제 시 보면 그래요.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우리 딸이 김소월 같은 시를 썼으면 좋겠어. 봄마다 진달래꽃 피면 사람들이 생각하잖아"라고.(웃음) 그러면 제가 말하죠. "엄마, 나는 영혼이 김소월이 아니라 그럴 수 없다고."

호불호가 극명할 수 있지만 이소호 표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으니까.
가끔 독자들한테 쪽지가 와요. 잘 읽었다고. 나도 아팠다고. 제 이야기가 위로가 되었다니 뿌듯하죠.

작가님 시 중에 '연습'은 두루두루 사랑 받는 것 같은데.
등단 시 중 하나인데. 이 시를 많은 분들이 좋아해서 놀랐어요. SNS에서도 올라오더라고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이런 시를 많이 써야 하는데.(웃음)

 

  ▶ 이소호 시인

시인이 가장 아끼는 시는 뭔지.
'복어국'이요. 시가 너무 자극적이라 그런지 많이 언급은 안 되지만. 이 시를 제일 아껴요. '복어국'을 통해서 처음 '경진이네' 시리즈가 탄생한 거거든요. 이 시를 쓰면서 '시진이와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좋아하는 시인은 누구에요?
박서원, 최승자. 허수경 시인 좋아해요. 주로 여성 시인을 좋아하고 서울예대에서 만난 김혜순 교수님 정말 좋아해요. 교수님은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저도 그랬어요.  시집 <당신의 첫>에 실린 '첫'이라는 시를 좋아해요. 속도감이 있으면서도 깊이가 있는 시인데. 제 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가독성이 뛰어나서 길지만 길지 않게 읽히면서도 마음에 오래 남는. 

 

“내 방식대로 고백하기, 멈추지 않을 것”


첫 시집이 나오면 시인의 캐릭터도 자연스레 생기고는 하죠. 자신에게 붙여질 만한 평가, 이름을 상상해본다면?
제 시를 보면 알겠지만 우울함이 있어요. 그래서 선배들이 놀리듯이 우울증환자라고.(웃음) 발랄한 척 하지만 시가 우울하잖아요. 실은 본인 이야기를 하는 것뿐인데 기가 세다고 할 수도 있고.

작가님에게 시는 무엇인가요.
제가 꼭 듣고 싶었던 질문이자,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동생이 어릴 때부터 몸이 아팠어요. 주변 사람들의 관심, 시선이 모두 동생에게 집중되는 거죠. 아픈 아이 옆에 있는 저는 상대적으로 가만히 두게 되는. '나 이렇게 힘든 일이 있었어'라고 이야기해도 저를 신경 쓰지 않는 거죠. 시는 아무도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쓰기 시작한 거에요.

한 권의 시집이 탄생하면 작가님의 말을 들어줄 독자들도 늘어나게 되겠죠. 시인의 꿈은 뭔가요?
첫 시집이 나오면 그 시집을 서점에 가서 내가 사는 것.(웃음) 고등학생 때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후부터 꿈이에요. 잘 쓴 시보다 유일한 시를 쓰고 싶어요.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이소호의 시를 쓰려고요. 내 방식대로 열심히 고백할 거에요. 고백을 멈출 생각은 없어요.

 

• 이소호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 동국대 국문과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2014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진정은  biz99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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