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책/출판
<인터뷰> 김연필 시인, ‘언어의 감각이 주는 오락성’
  • 진정은
  • 승인 2018.07.03 12:17
  • 댓글 0
  ▶ 김연필 시인

“단어마다 그 자체의 심상, 이미지가 있잖아요. 저는 그 지점에 가장 흥미를 느껴요.”

필명처럼 언어와 살을 맞대고 있는 느낌이다. 서른 셋 김연필 시인의 취미는 언어를 분해했다 이내 다시 붙여보고 또 떼어보는 것. 어느 날은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공중에 흩날려보기도 한다.

조립된 언어가 가진 운동성, 거기에서 오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김연필 시인은 언어 자체가 주는 오락성을 이야기하는 일이 매일 반갑다.

언어의 감각 따라가다 보면
시의 재미 느낄 수 있어
시의 유일한 효용은 유희


“평범해 보이는 문장이 더 흥미로워”


근황이 궁금해요.
꾸준히 작업하고 있어요. 어쩌다 보니 시보다 산문을 더 많이 쓰게 됐네요. 어린이 대상으로 글쓰기 교육법 원고도 쓰고. 이래저래 마감이 많아지니까 삶이 피폐해졌어요.(웃음)

동물 애호가로 알려져 있던데. 피폐할 때는 반려동물로 힐링하는지.
유년기부터 다양한 동물을 키웠죠. 포유류, 파충류, 양서류 등. 동물을 좋아해요. <현대시학> ‘내가 사랑하는 동물’ 코너에 산문도 쓰는 중이고. 지금은 고양이, 산호만 키우고 있어요.

동물 애호 역사가 그 정도라면 시도 영향을 받을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 많이 들어요. 동물 좋아하니까 동물 관련한 시를 지을 것 같다고. 그런데 또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시 쓸 때 특성 하나가 고유명사를 안 써요. 대상이 광범위한 거죠. 예를 들어 특정 새를 언급하는 게 아니라 그냥 새라고 지칭해요. 제가 키웠던 물고기가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물고기 전체를 뜻해요. 제 시 속에서 중심적으로 차지하는 건 오히려 어렸을 때부터 사로잡고 있는 이미지에요.

예를 들자면?
나무나 새. 음... 최근에는 돌이요. 올 초에 앤솔러지 시집을 냈는데 그 책에 '정녕'이라는 시가 있어요. 작년에 제주도에서 한 달 살았는데. 제주도에 현무암이 많잖아요? 인상 깊었던 제주의 풍경을 녹여냈어요.

앤솔리지 시집 이야기를 해볼게요.
7명의 젊은 시인의 시를 담았어요. 저도 신작 시 7편을 담았죠.

본인의 시가 책으로 묶여 나온 건 처음인데. 작업 과정은 어땠어요?
작년에 위원회 지원을 받으면서 평소보다 책도 많이 읽고 여행도 많이 갔어요. 외부 자극이 많아지면서 시도 많이 쓰게 된 것 같아요. 시 쓸 때 특히 영향을 준 건 시계에요.

시계요?
작년에 개인적으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는데. 그러면서 손목시계를 질렀거든요.(웃음) 손목에 차고 계속 시계만 쳐다보니까 소재로 쓰게 됐죠.

어떤 작품인가요?
'나의 정원은 영원히 돌고'가 시계를 산 후 얼마 되지 않아 쓰게 된 시예요. 사실 앤솔러지에 들어간 ‘시계’는 오래 전에 쓴 것이고요. 이전부터 꾸준히 시계라는 사물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써 둔 시가 많은 편인가 봐요.
발표를 못했다 뿐이지 쌓아둔 시들이 많아요. 제가 시를 좀 독특하게 써요. 평소에 아무 것도 안 하다가 이미지나 문장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쓰거든요. 짧으면 5분, 오래 걸리면 20분? 그러다 보니 다작하는 편이에요. 시 한 편을 오래 붙잡고 수정하는 시인이 있는 반면 저처럼 바로 쓰는 작가도 있고. 체질의 차이 같아요.

앤솔러지에 담은 시는 어때요? 등단작과는 많이 다른지.
우선 등단 전의 시와 등단작이 많이 달라요. 등단 전에는 원래 서정적인 경향이 강한 시를 썼어요. 그러다 김춘수 시인의 <의자와 계단>이라는 시집을 봤는데, 그냥 평범한 문장들을 늘어놓은 것뿐인데 이것은 명확히 시라고 느껴지는 거예요. 저는 분석적인 성향이라 시가 왜 좋은지, 어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하며 읽거든요. 그런데 이 책에 담긴 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겠는 거죠. 그런데 묘하게 굉장히 좋아요.

 

  ▶ 김연필 시인

시집의 영향을 받았군요.
네. 묘한 체험 후에 정말 아무것도 아닌 문장들을 짧게 적어서 묶어보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시를 쓴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일반적인 시의 기법인 비유, 상징을 넣지 않은 평범한 문장을 썼죠.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시의 형태를 갖춘 것 같아요. 그때 모았던 시가 등단 작품이 됐죠. 그렇게 계속 썼더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와요.

창작 스타일이 몸에 배었나 봐요.
문장 만들기가 사유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몸에 내재된 게 뿜어져 나오는 느낌? 그렇게 쓰는 시가 더 좋게 느껴져요. 다 본인에게 맞는 옷이 있나 봐요.
“음악 즐기듯 시 읽으면 재미있어”
써둔 시가 많다면 첫 시집을 기대해도 좋겠네요.
출판사와 구두로 시집 출간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출판사 사정으로 물 건너 가고.(웃음) 최근에 한 40편 정도를 묶어서 출판사에 투고했는데 반려됐거든요. ‘젊은 시인이 보여야 될 에너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자기 답습을 하고 있다’는 식의 답변을 받았는데. 납득되지 않는 부분도 있죠.

고민이 되겠군요.
저는 정말 에너지가 없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을 잘 표출하기 위해 쌓아 올린 작업을 자기 답습이라고 평가하니까 기분 상하기도 하고. 명백히 하고 싶은 작업이 있어 쌓아올린 성과물이고, 그것들 안에서도 꾸준히 갱신을 했다 생각하거든요. '젊은 에너지'라는 게 젊은 시인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에서 오는 편견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시인에게 과제로 작용할 것 같은데.
결론은 하나죠. 내가 하고 싶은 쪽으로 가는 것. 원고를 짜는 데 부족함이 있었나 더 고민해보고, 추구하는 바를 좀더 잘 드러낼 수 있는 원고를 써볼까 궁리하는 거죠. 출판사에서 그렇게 인식한 데에는 제 작품이 그런 의도를 잘 드러낼 만큼 완성도가 높지 못해서 아니겠어요? 고민되지만 제가 의도하는 작품 세계를 유지하면서 기존의 시 작법에서 부족함을 채우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작가의 시는 대상에 대한 이미지, 심상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시에서 제 생활을 못 써요.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요. 시 속에는 주로 심상 속 공간이랄까. 이미지 속에만 존재하는 세계를 재현해요. 흔히 시에 시인의 삶이 녹아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제 시는 언뜻 봤을 때 시인의 삶이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구체적인 상황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어휘를 선택해서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제 삶의 모습이나 상황,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거니까. 지금의 시에도 제 삶이 녹아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읽으면 내 시가 더 재밌지 않을까’ 하는 거 있는지. 감상 팁이요.


너의 손등을 간지럽힌다. 네가 잠든 동안. 너의 손등에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은 지워지지 않는다. 너의 손에 말을 적으면 너는 조금씩 말을 시작하고. 너의 그림은 조금씩 흔들린다. 나는 흔들리는 너를 안아본다. 흔들리는 너를 간지럽힌다. 너는 웃고. 그러다 보면 검은 돌들이 우리를 둘러싼다. 손등에 그린 그림은 돌의 그림이다. 손등에 쓴 말은 물의 말이다. 물이 너의 손등을 간지럽히고, 나는 웃는다. 웃음이 자꾸만 돌 속에서 흐르고. 나는 너의 손등에 그린 그림이다, 너의 뺨이다, 물에 적신 너의 어떤 곳이다. 어떤 곳에 어떤 그림 그린다. 너는 계속 웃는다. 나는 계속 우습다. 나는 흔들리는 것들을 본다. 돌아가는 것들을 본다. 우스운 것들에 다가간다. 너의 뺨에는 구멍이 많다. 너에게 물이 스미고. 너는 발화한다. 계속되는 발화 속에서 흔들리며 돌아가는 것을. 너의 손등이 지워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린다.

<’정녕’ 전문>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가 어렵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시에서 메시지, 의미를 발굴하려고 해서 어렵다고 느끼는 거 아닌가 싶어요. 제가 시에서 지향하는 것은 언어 자체의 감각이에요. 말의 지시 대상이 갖는 이미지가 아닌 말 자체의 감각이요. 언어를 운동시키는 작업을 많이 하죠. 좌측에서 우측으로, 뭉쳤다 흩어지게. 비유적 표현이 있으면 언어의 섬세한 운동에 눈이 가지 않고 의미에만 초점이 맞춰져요. 음악을 즐길 때 멜로디와 리듬을 몸으로 느끼잖아요? 마찬가지로 시에서도 언어의 운동성, 자체의 감각을 따라가다 보면 또 그만의 재미가 있어요. 의외로 쉽게 읽힐 수도 있고.

그래서 시에 비유를 쓰지 않는 건지.
대화할 때는 비유를 많이 쓰는데 시에는 안 써요. 그 동안 은유가 너무 많이 사용되어서 문학적 자극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차라리 선명한 진술이 문학적이라고 느껴진달까. 은유로 만날 수 있는 최대치를 사람들이 이미 겪어버린 것 같아요. 다른 식의 문학적 자극을 찾는 것 같기도 하고. 저는 의미적 자극보다 언어 자체가 가진 감각이 더 흥미로워요. 모든 말들에는 그 기표가 가진 독특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하늘’이라는 말 자체가 갖고 있는 느낌이요. 그 감각에 집중하는 편이죠.


“희열과 고통 오가는 시 창작… 그래도 계속 쓰고 싶어”


시인에게 시가 효용의 측면이 있는지 궁금해요.
개인적으로 시의 효용은 없다고 생각해요. 시가 사람을 치유한다거나 하는 건 믿지 않고. 굳이 꼽자면 읽을 때의 재미, 유희 정도. 삶의 성찰이나 거창한 신념을 드러내는 건 과거의 시 역할인 것 같아요. 고매한 인격은 시가 아니라 시인의 삶 자체에서 드러나야 하는 거니까. 시의 가장 큰 효용 혹은 유일한 쓸모는 읽는 이를 즐겁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형태든 시로 다 인정받을 수 있는 거죠. SNS 시도 시로서 효용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 김연필 시인

시 쓸 때 어때요?
재미있죠. 생각한 대로 좋은 시가 나오면 희열을 느끼죠. 야구에서 홈런 터뜨리는 느낌? 슈퍼 플레이를 해낸 스포츠 선수처럼 즐겁죠. 그런데 그 뒤에 또 힘들어요. 이전 시에 비해 못한 시가 써질 때. 그러다 또 나은 게 나오면 한동안 기분 좋고. 결론적으로 고통 받는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계속 쓸 거 잖아요.
일종의 도박 중독 같아요.(웃음) 돈 잃으면 괴로운데 한 번 터지면 그 성공에 대한 미련 때문에 하는 것처럼. 사실 최근에 시풍이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굉장히 촘촘한 시를 많이 썼거든요. 문장과 문장 사이 간격이 없었어요. 문장과 문장을 엮어내는 방식으로 많이 썼는데. 엮이는 부분은 두되 비울 때는 비우고자 해요. 이것도 나름 재밌어요.


•김연필
1986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2012년 [시와 세계]로 등단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많은 동물을 키웠으며, 현재 산호, 고양이와 살고 있다.

진정은  biz99news@gmail.com

<저작권자 © 비즈99(BIZ99),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정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신생아화장품 ‘아토오겔’ 유아·아기수딩젤, 민감 피부를 위한 ‘저자극 제품’
신생아화장품 ‘아토오겔’ 유아·아기수딩젤, 민감 피부를 위한 ‘저자극 제품’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우녹스 오븐’ 활용 시니어 요리왕 선발대회 열어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우녹스 오븐’ 활용 시니어 요리왕 선발대회 열어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