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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선희 시인, ‘살며 사랑하며 글 쓰며’
  • 진정은
  • 승인 2018.07.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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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선희 시인

7년간 전국을 돌아다녔다. 길 위의 삶이 일상인 배선희 시인(57).

여행지의 민낯을 마주하면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시인의 배낭은 떠날 때 가벼웠지만 돌아올 때 늘 두둑했다. 비 내리는 대나무 밭의 수다를, 연두 빛 새싹의 설렘을, 봄날 백목련의 미소를 가득 담아왔으니.

“죽을 때까지 여행하고 싶다”는 시인은 길 위에서 살며, 사랑하며, 글을 쓴다.

세계 202개국 여행, 국내 7년간 일주 중
길 위,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감상 기록해
진실하게, 솔직하게 담은 시로 교감


“여행지에서 떠오른 심상이 시가 되다”


오랫동안 블로그에 여행기를 담아왔어요.
어릴 적 꿈이 세계일주였어요. 지금까지 전세계 202개국을 경험했죠. 세계 여행을 하던 중 ‘우리나라부터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전국 일주를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블로그 포스팅을 하게 됐고. 지금까지 전국 여행을 다니면서 매일 글을 쓰고 있죠.

벌써 7년 넘게 지속하고 있죠.
대한민국 문화재 총정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직접 탐방하고 기록하는 일인데. 사실 3년이면 끝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여행하다 보니까 아름다운 문화재, 명승지 등이 참 많은 거죠.

기간이 계속 늘어난 거군요.
시작은 사찰기행이었는데 천연 기념물, 문화 사적지까지 자연스럽게 담게 된 거죠.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의 풀, 한국의 꽃, 한국의 나무 등도 기록하고. 그뿐이겠어요? 지역별로 각양각색임 음식은 어떻고요. 향토 음식에는 그 지역만의 문화가 숨어있거든요. 같은 재료를 쓰지만 다른 스토리를 가진 음식 이야기도 재미나죠. 이렇게 계속 판이 커진 거에요. 각 카테고리 별로 보물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답니다.

닉네임이 '페이지'에요.
‘인생의 페이지를 열어 내가 본 세상을 담는다’는 뜻이에요.

멋지네요. 그 동안 정말 많은 곳을 다녔겠어요.
들어가기 어려운 섬도 다 다녀왔어요. 문화유산을 탐방하다 보니 현존하는 문화재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된 셈이고. 현재 문화재청 홍보자문위원도 맡고 있고, 문화재와 관련해 다양한 일을 해요.

문화재 전문가이기도 하군요. ‘여행 시인’으로도 불리잖아요.
특별히 시를 쓰기 위해 글을 쓴 건 아니었어요. 여행하면서 즉흥적으로 떠오른 것을 적었더니 반응이 좋았고, 여행시인이라는 이름도 갖게 됐네요.

블로그에 올린 시로 등단하셨죠?
네. 그래서 ‘대한민국 파워블로거 최초 여류 등단시인’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셨어요.(웃음) 

등단했을 때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시를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 건 아니에요. 또 스스로를 시인이라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그저 순간순간 좋아서 철없이 내뱉은 거였죠. 하지만 시와는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었어요. 

어떤 인연인가요?
예전에 종로3가의 한 카페에서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시낭송을 했었어요. 그때 고 황금찬 시인도 알게 됐는데. 참 좋더라고요. 가만히 앉아 시를 감상하는 게. 그때 만난 문학인들과 인연을 계속 이어왔었거든요. 제가 블로그로 만난 이웃님과 일년에 한 두 번 꼭 모임을 가져요. 파티처럼 만나서 마음을 나누고 문화예술을 누리는 시간인데. 모임 프로그램으로 시낭송회를 진행하게 됐죠. 시인을 모시려고 보니까 제가 자존심이 좀 상한 거에요. 시인을 섭외하는데 내가 시인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내가 ‘이번 기회에 등단해야겠다’고 했더니 지인 문인들이 문예지를 추천해줬어요.

등단한 해에 첫 시집이 나왔어요.
원래 책은 안 내려고 했어요. 한때 한국의 신흥종교를 여행 테마로 삼은 적이 있는데. 당시 만난 대종교인이 그러더군요. 글을 쓸 때 신중하게 쓰라고. 내 글로 인해 누군가 상처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내가 객관적으로 쓴다 해도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니 조심스러워졌죠. 젊어서 책을 쓰게 되면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 바람이 생길까 싶어 스스로 자제하기도 했고. 되도록 책을 쓰지 말자, 그런 생각이었죠.
 

  ▶ 배선희 시인

시집을 엮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블로그로 인연을 맺은 많은 분들이 시집을 요청했어요. 소장하고픈 욕망 있죠? 검색하면 언제든 시를 볼 수 있지만 손에 쥐어지는, 정리된 책을 원하더라고요. 또 제가 꾸준히 행사를 기획하잖아요. 특별한 모임이 열릴 때 소중한 분들에게 무언가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시집이 괜찮겠다 싶었어요. 등단했으니까 시집을 낼 자격도 되고, 하나의 추억으로 삼자, 하는 마음이었죠. 
 


“꾸미지 않은 진실함이 내 시의 매력” 


블로그로 만난 이들과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는데.
블로그를 개설한 이듬해에 처음 파티행사를 열었어요. 이웃님들과 같이 모여 함께 문화예술을 누리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거에요.

어떤 행사인지 궁금해요.
재능기부로 이뤄지는 행사에요. 케이크를 만드는 재능이 있다면 케이크를 만들고, 사진에 재능이 있다면 행사 현장을 사진으로 남기죠. 연주자라면 음악회를 열고, 댄서라면 무대를 꾸며요.

참여자의 재능으로 완성하는 행사군요.
그렇죠. 올해 4월에는 ‘블로그 방문자 1천만 돌파 기념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경주에서 300여명이 모였어요. 이번에는 ‘한궁 문화예술제’로 꾸며 스포츠와 예술이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를 만들었어요. 돈은 절대 안 받아요. 지역의 후원과 참여자의 재능으로 교류하는 행사랍니다. 뉴욕,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팬들이 와요. 일년에 한 번 만나는 행사를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만들어요.

팬이 많은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제 여행기나 시를 좋아하는 분들이 모였는데 이젠 그들의 가족이 함께 하는 행사가 된 거에요. 그래서 인원도 갈수록 늘어나고요.

작가님 시의 매력은 뭔가요?
아주 잘 다듬어진, 잘 쓴 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 동안 여행의 흔적, 꾸준히 기록하는 그 열정을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또 꾸미지 않은 진실함. 사람들이 자기가 여행하는 기분이 들고 진실되다라고 표현하더군요. 내가 좋아서 쓴 건데. 제 시 낭송을 들으면서 감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행복해요. 특히 열렬한 독자 중에 교수님들도 많거든요. 제가 오타를 내면 매번 알려주는 팬도 있고요.(웃음)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요? 

 

비 내리는 담양 죽녹원,
대나무 잎 사이 빗방울이 비집고 들어온다.
톡톡 튀는 빗방울에 영롱한 보석들이
또륵 또르르 구르고 있다.
서로 부딪치는 잎새들이
감미로운 몸부림의 음계를 이어
알 수 없는 언어로 서로 주고받는 것은
아마도 대나무나라의 언어이겠지!

귓가에 무어라 속삭이지만
인간 언어에 길들어버린 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들려주는 아름다운 대나무나라의 이야기도
신비로운 대나무나라의 노래도,
그냥 스쳐지나가는 바람으로만 느껴야 하다니

대나무나라의 언어를 가르쳐주는 곳은 없을까?
사르 사르락
대나무들이 주고받는 예쁜 이야기들을
정녕 엿들으려는 이들은 외계인이 아닐까?

언젠가는 나와 자연, 그리고 대나무가
한 발짝씩 가까워질 즈음에
나도 대나무 소리도 어울려 몸부림치겠지
생명의 언어는 하나일 테니.

<대나무 나라> 전문

대나무나라는 낭송회 때 빠지지 않고 낭송하는 것 같아요. 담양 죽녹원에 갔을 때 쓴 시인데. 그때 비가 오는 거에요. 빗방울이 또르르 떨어지고 바람 휘날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걸 써야겠다, 싶어서 우산 들고 핸드폰으로 막 적은 거죠.(웃음)

그렇게 탄생한 시들이 많군요. 첫 시집<페이지의 시 여행>은 사진, 그림이 있어 다채로워요.
조성일 작가님께서 그림을 그려주셨어요. 사진은 제가 찍은 거고. 시 한 편이 나온 뒤에는 어떻게 이 시를 쓰게 됐는지 간단한 설명도 넣었어요.

시편마다 큐알코드도 있네요?
큐알코드가 제 블로그와 연동돼 있어요. 큐알코드를 찍으면 그 시가 적힌 페이지로 연결돼요.

누구 아이디어였나요?
제 아이디어였어요.(웃음) 독자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블로그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더 생생하게 시를 읽을 수 있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장이요.

 

“죽을 때까지 여행하고 글 쓰고 싶어”


작가님을 보면서 기록의 위대함을 새삼 느껴요.
그렇죠. 기록이라는 게 참 중요해요. 문화재 탐방하면서 더 느꼈죠. 3000년 전에 예술가가 무언가를 기록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과거를 알 수 있는 거니까요. 블로그를 계속 하다 보니 사명감이 생겼어요. 계속 자료를 남겨 100년 뒤 후손에게 보여주겠다는 마음이요. 소박하지만 내가 본 세상, 대한민국 문화재를 잘 기록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시심(詩心)도.

블로그에 에세이도 많던데.
그렇지 않아도 수필집 출간을 생각하고 있어요. 출간 요청도 많이 들어오고 ‘배선희 작가는 시보다 수필이 더 좋다’는 말도 듣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거든요. 내년 초쯤 책을 낼까 싶어요.

앞으로도 독자들과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겠네요.
그렇죠. 함께 어울리면 좋잖아요. 예술 안에서 서로 행복을 느끼고, 내가 가진 것을 줄 수 있어 참 좋아요.

배선희 시인

작가님은 아낌없이 내어주는 타입인가 봐요.
제가 길 위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여행지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하면 내 옆에 있는 사람만이 나를 돌볼 수 있거든요. 그 순간만큼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저한테 제일 중요한, 전부에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제가 줄 수 있는 거를 다 줘요. 전혀 아깝지 않죠. 내가 내어주니까 또 사람들이 내게 많은 걸 주고. 그러니까 항상 남아요.

좋아서 즉흥적으로 시를 썼다고 하지만 작가님 작품이 가진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시는 지역과 상생관계라고 느껴요. 예술가가 특정 지역을 소재로 노래를 만들기도 하잖아요. 가수가 유명해지면 그 지역이 유명해지고 그러면 노래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죠. 제 시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시를 통해 사람들이 모이고 지방 문인과 교류하고, 지역 음식을 맛보고. 이런 게 지역 사회에 작지만 큰 힘이 되죠.

행복해 보여요. 꼭 지금처럼만 지내면 좋겠어요.
늘 소녀처럼 살고 싶어요.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고 그저 예쁜 꽃 보면서 감탄하고 사람들과 교감하고 표현하고. 얼마나 좋아요. 죽을 때까지 세상 여행할 거예요.

죽을 때까지?
네. 다리 힘 빠지면 휠체어를 끌고서라도.(웃음)

 

• 배선희
2011년부터 여행 블로그를 시작했다. 월간 <모던포엠>으로 등단했으며, 2017년에 첫 시집 <페이지의 시 여행>을 발간했다. 

진정은  biz99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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