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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훤이 보낸 '젊은 시인의 편지'
  • 진정은
  • 승인 2018.07.1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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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훤 시인/ 사진 제공: 이훤 시인


애틀란타에 있는 이훤 시인(32)에게 편지를 보냈다. 시인의 요즘이 궁금하다고. 한국에 있는 팬들에게 당신의 소식을 전하고픈데 시간이 되겠냐고. 시인은 흔쾌히 답장하겠노라고 했다.

편지가 도착했다. 자신이 소년이었을 때부터 요즘 이야기까지 꾹꾹 눌러 정성스레 적어준 시인. 그 성실한 텍스트가 참 고맙다. 독자의 하루를 안아주는 그의 시를 꼭 닮은, 편지를 열어본다. 

시 창작과 번역, 사진가로 활동해
시로써 읽히는 사진 찍고 싶어
시는 사는 데 꼭 필요한 체위같아


“나의 언어를 더 세게 쥐게 될 때”


안녕하세요. 작가님.
반갑습니다. 거리가 멀다 보니 인터뷰는 늘 서면으로 하게 되네요. 이야기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작가님 소식을 기다리는 팬들에게도 인터뷰가 기쁨이 될 것 같아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낮에는 데이터 분석을 하고 퇴근하면 쓰거나 찍는 일을 해요. <시인동네>에 사진을 연재하고 있고, 가을쯤 출판 예정인 사진 산문집 원고를 어제 송고했어요.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시군요.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는 곳에서 한글을 쓰는 시인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글이 애틋해지는 순간이 많아요. 한글로 된 시집과 잡지를 잔뜩 들고 나오는 장면을 자주 상상해요. 별일 아닌데 그게 안 되니 좀 쓸쓸해져요. 결핍을 느끼나봐요. 사정을 알고,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운영하는 희경 선배랑 은이 형이 책을 여러 권 보내주기도 했어요. 귀국했을 땐 책을 한 가득 사주기도 하시고. 좋은 사람들에게 늘 빚진 마음이에요.

그런 쓸쓸함이 있군요.
꾸준한 거리가 주는 막연한 고립감이 있어요. 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래요. 특히 가고 싶은 낭독회에 가지 못하거나 독자들과 만나지 못한다거나 애정하는 사람들의 기쁜 순간이나 어둔 표정에 동참하지 못할 때, 텁텁함을 느껴요. 

시 창작.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해요.
소년일 때부터 기록하는 일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책은 싫어했어요. 읽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죠. 일찌감치 언어를 정형화하고, 외우고, ‘맞춰야’ 하는 방식에 신물이 나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열아홉 즈음 애틀랜타로 이민을 왔어요. 혼자 낯선 나라에 오게 되니 붙잡을 게 카메라와 모국어밖에 없더라고요. 타국어가 서툰 사람은 일절 말을 하지 않거나 모국어를 붙잡게 돼요.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있고 그 나라 언어는 잘하지 못하니까, 나의 언어를 더 세게 쥐는 거죠.

‘나의 언어를 더 세게 쥔다’라.
역설적이게도 영어 때문에 한글을 누리는 기쁨을 느끼게 됐어요. 살기 위해 영어를 배웠는데요. 처음으로 어떤 편견도 시험도 없이 하나의 언어를 넘어야 했던 거죠. 다른 언어를 체득하다 보니 천천히 감각이 깨어났고 그제야 한글이 얼마큼 정교하고 근사한 언어인지 실감하게 됐어요.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한글로 된 책을, 다른 대륙에 당도하고서야 읽기 시작한 거예요.

재밌네요.
재밌죠. 돌이켜 보면 언어를 언어로 들여다볼 여유가 그때 처음 생겼던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래서 시 창작뿐 아니라 사진 찍는 일에도 몰두하신 거고.
네. 이민 초창기에 사진기를 많이 의지했어요. 참았던 말이 렌즈를 통해 대신 구현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시각적으로 해소가 됐던 것 같아요. 필름 카메라 수업을 들었고, 졸업 선물로 첫 DSLR을 받으며 계속 찍게 됐어요.

시를 쓰고 사진을 찍는 걸 보면 예술적 자질이 충만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전공은 공대여서 살짝 놀랐어요.
기록하고 찍는 일이 좋아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냥 했어요. 그런데 업으로 할 엄두는 안 났어요. 그냥 공대에 진학하고 공부에 전념했죠. 학부 졸업이 가까워지니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서히 앓다 석사 때 휴학했어요.

휴학한 후에 습작을 시작했군요.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막막했어요. 써두었던 산문을 들고 월간지를 만드는 잡지사에 무작정 찾아갔어요.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인턴으로 시작했고 나중에 에디터로 일하게 됐어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온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걸 문장으로 옮기는 일이 무척 좋았어요. 영어와 한글 두 언어로 기사를 쓰는 잡지였는데, 후에 문학 번역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어요.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계속 시를 쓴 거죠?
퇴근하고 나면 시를 썼어요. 사 년 동안 읽고 쓰는 일에만 몰두한 것 같아요. 쓰기로 했을 때 약속 했거든요. 아바라 부르던 분께 다짐했는데, ‘누군가의 안온을 돕는 문장을 쓰겠다’는 거였어요. 방향이 돼 주었어요.

 ▶ 이훤 시인/ 사진 제공: 이훤 시인

습작할 때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많이 쓰고, 많이 고쳤어요. 열 번 스무 번씩요. 습관이 됐는지 지금도 그래요. 그리고 많이 읽었어요. 읽으면서 시인들이 만든 세계를 분별하려 애썼어요. 그래야 벗어난 곳에 나의 언어를 구축할 수 있다 생각했거든요. 조급해져서 처음엔 등단하기 유리한(?) 스타일을 흉내 내기도 했는데 이내 그만뒀어요. 나의 시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2014년에 등단했죠.
부지런히 투고했어요. 당시에는 문단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어떤 결정이 좋은지 몰라 좀 헤맸던 것 같아요. 오래도록 그런 배경을 열등으로 생각했는데, 더는 그리하지 않게 됐어요.


“사진에도 시가 담길 수 있다고 믿게 돼”


첫 시집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가 인기가 많아요. 벌써 8쇄라고.
기쁘고, 부끄럽고 그래요. 첫 시집은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라며 쓴 시집이에요. 

계기요?
조금 더 많은 분들이 시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부러 더 친절하게 쓴 시도 더러 있고. 시가 익숙지 않은 분들이 읽어주시면 그래서 감사해요. 지나간 시절의 문장을 들여다보는 건 아무래도 조금 낯설고 쑥스러워요.

작가님 시는 책으로 묶이기 전부터 온라인에서 널리 읽혔어요.
책을 내기 전부터, 시가 더 친밀해지는 방법이 있을지 적잖게 고민했어요. 쓰는 사람들이 그 일을 적극적으로 시작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SNS에 시를 올리신 거군요.
근래에는 작가가 웹에 작품을 공유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시를 데려가려는 시도가 늘었지만, 사오 년 전만 해도, 시를 쓰거나 공부하는 사람만 읽는 분위기였어요. 기존 시 독자가 아닌 일반 독자층이 찾는 시가 고정적이고 협소하다고 느꼈어요. 변화를 모색하고 싶어 온라인에 쓰기 시작했죠. 그런 고민이 반영된 문장을 그때는 많이 썼어요. 오늘의 저와 멀리 있다고 느껴지는 문장도 있지만 그 시간을 후회하진 않아요.

작가님의 시 중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독자분들께서 메시지 주실 때 ‘다 다른 고백’이라는 시를 자주 언급해주셨어요. 읽는 사람에 따라 기억해주시는 시의 성격이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생활이 촘촘해집니다. 주위에 수요일 같은 사람들이 늘어가고. 나는 자주 부재합니다. 그 자리에 나는 없어요. 우리, 다른 요일로 사라지기로 해. 벗어나지 못하는 벗을 벌이라 하면 가혹한가요 아님 덤이라 하면요. 그러나, 라는 말에 너무 익숙해지지 말아야 할텐데. 홀로 맞는 볕은 그러나 너무 싱싱해. 따사롭지 못한 나를 데펴주세요. 나로부터 나를 지켜주세요. 가끔 소독이 필요한 듯 하늘을 한참 보곤 해. 일요일마다 관용을 한 주머니씩 담아오고. 그때마다 푹 잘 수 있어요. 헤진 밤이 닫히면, 널브러진 용서를 덮고 곯아떨어져요. 어떤 고백에 다다라요. 다 다른 고백들이 요일처럼 붙어 있어요.

<다 다른 고백>, 전문

반대로 시인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 무엇인지.
번뜩 떠오르진 않지만, 첫 시집에 수록한 ‘빈 소원’이라는 시가 생각나요. 습작하던 시기의 첫 마음에 대해 썼던 시인데요. 그때의 자세, 그때 견디던 기후, 그때 생활 같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돼서 마음이 가요. 

뱉지 못한 낱말이 천장까지 쌓인 곳에서 누구도 시간을 묻지 않는 곳에서 출구와 입구가 동일한 곳에서 구겨진 눈살이 허공처럼 지워지는 곳에서. 시를 쓰고 싶어.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누군가 계속 찾는 시를 쓰고 싶어. 독백 가득한 연습장처럼 세계를 읽고 싶어. 아무도 읽지 않을 것처럼 쓰고 싶어. 무엇도 잃지 않을 것처럼 쓰고 싶어. 쓰여지고 싶어. 늘 첫 줄처럼 쓰여지고 싶어. 행간처럼 담백하고 싶어. 빈 소원을 갖고 싶어.]

<빈 소원>, 전문

요즘은 어떤 시를 쓰는지 궁금해요. 가장 최근에 발표한 시도 소개해주세요.
마음을 먼 데 두고 온 사람처럼 지낸 시간이 있었어요. 생활에 대한 고민을 놓지 못했고 시도 써지지 않아 무슨 일이든 무겁게 느껴졌어요. 그 시간을 나오는 시기에 적은 시예요. 독립문예지 『영향력』 7월호에 발표했어요.
 

시에 부쩍 시가 없다
화자가 저자의 행방을 의아해한다
언어는 저자가 저자 되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사람이 언어를 방치한다
서점에는 독자가 없다
사람만 있다
책만 있다
사람에 대해 서점 주인이 생각한다
서점 주인이 책이 서점 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책은 사람을 후회한다
21세기 몸집은 숫자로 적힌다
방향을 잃은 방향은 체위에 대해 생각한다
돈은
체위를 두 개만 가지고 있다
나가는 돈이 들어오는 돈을 생각한다
돈의 아귀에 대해 책의 귀가 생각한다
읽히지 못한 말들에 대해
읽힌 말은 염려한다
구석을 지키지 못한 구석이 가장자리에 대해 생각한다
가장의 자리에 대해 가장이 고민한다
생각한다
시와 저자와 서점과 서점 주인과 돈과 돈의 어귀가 스스로 됨에 대해
또 스스로 되지 못함에 대해
생각한다
에 대해, 가 에 대해에 대해 생각한다


<에 대해,에 대해>, 전문

 

시 쓸 때, 사진 찍을 때 작가님은 많이 다른가요? 두 작업을 어떻게 병행하는지.
달랐는데, 비슷해지고 있어요. 두 일 모두 마음에 집중하려 하는 편이에요. 카메라와 피사체를 단순히 기계 대 대상으로 치환하는 방식을 벗어나려고 해요. 허구의 화자나, 사물이라 하더라도 그들 입장에 들어서서 찬찬히 살피는 시의 접근 방식을 사진에도 응용하고 있어요. 평소 마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 자연스레 그리 된 것도 있고요.
특히 사물만 겪는 체위를 살피는 과정이 즐거워요. 이입해서 찍으면 오래 남는 것 같아요. 결과물도 다르고. 시와 사진이 만나는 몇 지점이 있을 뿐이라고 믿었는데, 사진에도 시가 담길 수 있다고 믿게 됐어요. ‘시적’ 사진을 찍는다기보다, ‘시’로써 읽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요즘 작가님 시선에 자꾸 들어오는 것들이 있나요?
흑백의 시선에 맘이 가요. 그레이스케일로 찍는 사진이 많아졌어요. 색이 다 사라지면 상상하게 되잖아요. 그 가능성에 매료되는 것 같아요. 채도 없이, 얼마큼 흑에 가까운가, 만으로 표현되는 단순함이 좋아요. 다음 책은 흑백으로만 시도해보고 싶어요.


“시, 독자에게 가장 필요한 방식으로 읽히기를”


사진 산문집이 늦가을이나 겨울 즈음 출판될 거라고 하셨죠. 산문집 소개를 살짝 해주신다면.
사물의 입장을 사진으로 관찰하고 시에 가깝게 구현해보자는 취지로 찍었어요. 월간 《시인동네》에 두 해 동안 연재했는데요. 텍스트가 주가 되고 사진이 부가 되는 통상적인 방식이 아니라 작품으로써 사진을 먼저 촬영하고 텍스트를 더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 이훤 시인/ 사진 제공: 이훤 시인

사진 산문집 기대되네요. 첫 시집이 사랑 받는 만큼 다음 시집을 기다리는 이들도 많을 텐데요. 두 번째 시집은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차기 시집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즈음 나올 것 같아요. 첫 시집이 스무 몇의 이훤이 겪던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두 번째 시집은 이후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극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이야기하는 대상이 조금 달라져 있더라고요. 첫 시집을 펼쳐보면 지나간 시절의 문장이 간혹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때 나는 이런 마음이었구나’하고 그냥 수긍해주어요.

열아홉 소년이 애틀란타에 정착해 서른 둘이 되었어요. 그 안에 시가 있었고요. 작가님이 시를 쓰는 이유가 궁금해요.
잘 지속되기 위해 써요. 스스로 부정하거나 와해하지 않고 지속되려고. 그리고 누군가 지속되는 일에 보탬이 되려고 써요. 사는 데 꼭 필요한 체위 같아요. 시라는 건. 마음이 갖는 일종의 골격 같은 거요.

사람들에게 작가님의 작품이 어떻게 닿기를 바라는지요.
독자 개개인에게 가장 필요한 방식으로 읽히길 바라요. 그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음으로요. 저자의 음성이 읽히는 것도 좋지만, 단순히 문장이 문장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시에서 각자의 세계를 찾아오는 일이 시인의 바람이나 의도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껴요. 분노하게 되면 분노하고, 울고 싶어지면 울고, 슬픔을 놓치게 된다면 놓치는 방식으로 시가 움직였으면 해요.


• 이훤
시인, 사진가. 2014년 <문학과의식>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2016)가 있고 『너의 눈동자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2018) 등에 필진으로 참여했다. 《DISTANCE》외 몇 차례의 사진전을 가졌으며 <Atlanta Photography Group>의 멤버로 활동했다. 『시인동네』에 사진을 연재 중이다.

진정은  biz99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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