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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지인 시인 “생의 아픔과 슬픔 외면하지 않고 파”
  • 진정은
  • 승인 2018.07.1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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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인 시인

햇볕 좋은 정오에 최지인 시인(28)을 만났다.

“오늘 저녁에 비 온대. 우산 꼭 챙겨.”

어째서 이런 음성이 떠올랐을까. 시인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문학이 가장 잘 하는 건 ‘아프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곤조곤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슬픔과 괴로움,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생의 아픔과 슬픔을 마주하겠다는 젊은 시인. 그가 써내려 간 시가 소중한 이의 어깨가 젖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그 마음과 비슷한 것 같아, 라고 혼잣말을 해본다. 특별할 것 없는 사소한 음성을 생각하다 저녁이 될 때까지 걸어도 좋겠다, 싶은 대낮이었다.


행복한 삶 고민해
삶과 가까이 있는 시 쓰고파  


“어떻게 하면 행복할 지가 요즘 화두”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어요. 많이 바쁘죠?
직장인들의 생활이 다 그렇죠. 그래도 책 만드는 일이 잘 맞아서 재밌게 하고 있어요.

지금 어떤 책을 담당하고 있는지 궁금한데.
『미움 받을 용기』로 유명한 기시미 이치로의 후속작을 담당하고 있어요. 원제는 『늙어가는 용기老いる勇気』예요. 어제 번역고를 다 읽었는데 정말 좋아요. 제가 만든 책 중에 명진 스님의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라는 책이 있는데, 두 권의 책이 메시지가 비슷해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에 관해 말하고 있죠. 올해 이 책들을 만지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많이 배우고 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나왔나요?
명진 스님께서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두 개의 트랙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세요. 개인적인 트랙과 사회적인 트랙이요. 개인적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회에 참여해 더불어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했죠. 이 세상에 혼자 산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아무리 능력이 좋고 돈이 많아도 지구에 한 인간만 남는다면 과연 행복할까, 의문이에요. 『늙어가는 용기』도 어떻게 타인과 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에요. 어떻게 내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지 생각하는 기회였어요. 올해 9월에 출간되는 기시미 이치로의 신작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웃음)

편집자답네요. 일하면서 시 쓰는 건 어때요?
따져보면 여태껏 직장 생활을 4~5년 정도했어요. 계속 일을 해왔는데, 일과 병행하면서 글 쓰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아요. 물론 제가 게으른 것도 있지만요.(웃음)

아무래도 글 쓰는 시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죠.
제가 세속적인 욕망이 많아요.(웃음) 여행도 가고 싶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은데. 일하고 노는 시간이 늘다 보니 글 쓰는 시간이 줄어들죠. 원고 청탁이 와도 거절하고 있어요. 한 편의 시를 완성한지 오래됐어요.

낭독회 활동은 종종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시를 완성하게 된다면 낭독회에서 만났던 독자들의 관심과 응원 덕분일 거에요. 그게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에요. 독자들을 만나면 ‘써야겠다’,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만큼 부담도 돼요. 완성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게 거짓말 같고.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 앞에서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생의 아픔과 슬픔 외면하지 않고파”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시인들의 시선집에 참여했어요. 문화예술인들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기도 했고.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편인가요?
사회 운동을 열심히 하는 선배 작가들에 비하면 제 목소리는 큰 목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고 고요한 목소리라고 하면 맞을 거에요.

작고 고요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는 이유, 궁금해요.
저는 되게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나 혼자 즐거워서는 행복할 수 없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행복해야 나도 행복한 삶을 산다고 생각해요.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적 문제, 노동 문제, 국가 폭력 문제 등이 해결돼야겠죠.

그렇죠.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갔을 때, 목소리를 내든 안 내든 그 행위 자체가 개인의 행복을 결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작은 돌들이 모여 바위가 되고, 바위가 모여 거대한 것이 되듯. 궁극적으로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게 어떤 것을 전복시키는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건 좀 거창한 이야기인데.

거창한 이야기요?
글 쓰는 자는 고통이나 슬픔을 외면하는 순간, 글 쓰는 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문학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라고 했을 때 기쁨, 즐거움, 재미 등이 있겠지만 이건 문학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죠. 문학이 가장 잘하는 건 슬픔, 고통, 소외받는 자들의 이야기를 조곤조곤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글 쓰는 사람으로 계속 살아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어떤 슬픔과 괴로움, 아픔 등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문학을 통해 작가님이 얻는 게 뭔지 궁금해졌어요.
저는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싶어요. 하지만 문학은 그것을 성취하는 수단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요. 문학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거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감각’인 것 같아요. 문학은 나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나와 다른 사람이 여기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의 삶을 헤아려보는 거니까요.

 

  ▶ 최지인 시인

첫 시집 이야기를 해볼게요. 시집의 시가 전반적으로 생활밀착형인데.
2013년에 등단한 이듬해 세월호 참사가 있었죠. 이후 제 시는 완전히 바뀌었어요. 광장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발언을 들었는데, 우리가 아는 유명인, 지식인 등의 이야기보다 진짜 감동이었던 건 평범한 개인의 목소리였어요. "안산에 사는 50대 주부입니다"라고 시작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떤 문학보다 울림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고민하게 됐죠. 문학이 뭘까.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첨단의 문학이 있다면 나는 그런 것보다는 조금 더 삶에 가까운 문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첫 시집 만들고는 어땠나요.
처음에는 부끄러웠어요. 저 개인의 파편이 이곳저곳 널려있는데.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 안 했거든요.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못난 모습이 드러난 거니까. 그래도 든든한 친구가 생긴 것 같아요. 시집에 제 스승이신 이경수 평론가의 해설이 실렸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의 해설이 제 첫 책에 실렸다는 게 참 좋았어요.

시집의 시를 보면 아내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경험담인가요?
아, 저는 아직 미혼입니다.(웃음)

그러면 '아내'는 누구인가요?
생뚱맞은 답일 수 있는데. 사랑은 제 가치관이고 살아가는 의미예요. 어제 동료 시인과 근처에서 밥을 먹고 커피 마시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만약에 인간이 사랑을 하지 않으면 이 세계를 살아갈 이유가 뭐가 있을까’라고.

사랑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내 삶에서 사랑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고생하고 글을 쓰고, 힘듦을 견뎌내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내라는 인물은 은유적 존재에요. ‘아내’라는 인물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어요. 애틋한 존재에요.

「비정규」라는 시에서 시집 제목 『나는 벽에 붙어 잤다』가 탄생했어요.
「비정규」라는 시는 제 시집에서 가장 날것인 작품이에요. 투박한 시죠. 사실 처음에는 조금 멋진 제목을 시집에 달고 싶었어요. 『나는 벽에 붙어 잤다』는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 시인께서 제안해주셨는데, 그 선배가 ‘청바지 같이 오래오래 갈 제목인 것 같다’고 해서 이걸로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평전에서 살아갈 힘 얻어” 


가장 아끼는 시는 뭔가요?
제가 쓴 모든 시를 아껴요.(웃음) 시집을 내고 나서 쓴 시가 있어요. 「마카벨리傳」이라고. 마카벨리가 힙합 가수 투팍의 애칭이에요. 그의 삶이 저한테 와 닿는 지점이 있었고 그의 이름을 빌려 시 한 편 쓰고 싶었어요.

1
그는 깃발에 적었다
당신이 아이들에게 물려준 혐오가 모두를 망친다*

2
몹시 추운 겨울 한 부랑자가
공중화장실 대변기에 앉아 잠들었다
다음날 그 사람은 죽은 채 발견되었다

그는 그 사건의 최초 목격자였다
일종의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날 맡은 지독한 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점점 짙어졌다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
그야말로 완벽했을 때
삶도 죽음도 같고 책임 따위 없었을 때
피할 궁리는 하지 않았다

그는 사흘을 굶고
허겁지겁 뼈다귓국을 퍼먹었다
두 손으로 뼈를 쥔 꼴이란!

카메라 앞에 선 소년들이
K-2 소총을 어깨에 메고 인상을 찌푸렸다

3
열람 가능한 문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여덟 번의 계엄령을 선포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 어찌할 방도가 없다, 임금은 동결되고 몇 사람 솎아 내고
질서가 유지되었다

어머니의 배가 조금씩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감옥이었다
교도관이 수감자들과 어머니를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았다

4
인터뷰어가 녹음기를 끄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혁명이 가능하다고 봅니까? 권력가들은 옳지 않았어요. 우리 가족과 마을 사람 모두 그들에 의해 발가벗겨졌죠. 우리에게는 집이 필요했어요.

그는 베란다 난간에 등을 기대고 섰다
사막은 모든 게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다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일을 떠올리면
물속에 잠긴 네가 환하게 웃고

일을 그만두고 여행이라도 다녀오자 나의 실업을 증명하고 차를 몰고 정처 없이 떠돌자 슬픔은 지겹지 않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동료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5
가난한 사람이든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든 고난을 피할 순 없다 빈민가에서 자란 아이들은 철 지난 옷을 입고 놀이터에서 논다 흙을 잔뜩 묻히고 얼룩이 될 때까지 논다 그러다가 아무도 모르게 인생이 꼬이고 사랑을 하고 결국 시를 끄적이는 것이다

새 삶을 살고 싶다고 흥얼대는 취객처럼
그는 그가 진짜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가 광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서서히 밝아지고

세상을 바꾸겠다, 얘기하면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는 집에서 담배를 태웠고 문틈에 꽂힌 독촉장을 찢었다 일을 구하려고 애썼으나 실패했고 죽으려고 했으나 두려웠다 골방과 거리를 오가면서 확신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6
1966년 10월, 흑표범당은 정당 강령을 발표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믿고 원하는 것: 자유, 완벽한 고용, 보금자리, 올바른 교육, 사랑, 비폭력, 인간 대접, 전쟁의 종말, 비옥한 땅과 음식, 도시의 정원

이것이 목표다.

7
병사들이 날카로운 창끝으로 네 옆구리를 찌르면
너는 아파서 울 거야

약에 취한 아버지는 실종되었고
가계부채가 늘어갔다
여동생이 46.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9급 공무원이 됐다
어머니가 기뻐했다
살아 돌아오리라 약속했다

돌로 무덤을 세웠다 철근으로 콘크리트로 유리로 무덤을 세웠다 뼈로 살로 피로 무덤을 세웠다
무덤이 하늘 높이 솟았다
그것은 붕괴될 것이다

8
힘없는 자들이
입안에 독한 술을 털어 넣고
가장 아끼는 것을 박살냈다

9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부랑자였다

그는 정당한 보수를 받아본 적이 없었고
평생 일했다

결과가 어찌 됐건
그것은 왜곡되었다

형제들의 뒤통수는
하나같이 묵사발이 되었다

0
지난 태풍과 달리
이번 것은 별 피해 없이 지나갈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자, 다짐하며

*The Hate U Give Little Infants Fucks Everyone.


「마카벨리傳」전문


투팍의 삶에 꽂힌 이유가 궁금해요.
요즘 평전을 즐겨 읽거든요. 한 인간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생을 마감하는 걸 보면 기구하다는 생각도 들고, 동시에 살아갈 힘이 생겨요. 사는 게 막막할 때 제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전기를 사서 읽는 편인데,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어요. 본인의 작업에 누구보다 애착을 가졌고, 자기가 가진 걸 쏟아 부을 줄 알고, 사랑이든 일이든 열정적이었죠. 그런 이의 삶을 보면서 저는 용기를 얻어요.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고.

 

  ▶ 최지인 시인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데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겠죠.
그렇죠. 조금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지만요. 사실 작년에 많이 힘들었거든요. 작년에 쓴 시들은 대체로 암울해요. 그중 하나가 「다세대주택」이라는 시인데. 마지막 구절이 “오늘내일 죽어도 슬프지 않다니 글쎄”예요. 제 심정이 딱 그랬어요. 죽어도 슬프지 않은.

대출 신청 서류에는 직업 적는 칸 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이상의 일을 해야 하는데
칸 좁다 햇볕 들지 않는
앙증맞은 단칸방

젊은 부부가 일하러 간 사이 한 아이가 집을 나섰다 그 아이는 검고 붉은 얼굴 때문에 수줍게 웃었다 푸르뎅뎅한 목덜미 때문에 골목의 아이들에게 괴물이라 불렸다
 
더는 널 사랑하지 않아 네가 말했다 나는 네 앞을 가로막았다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허탈하지도 않고 고요했다

“죄송합니다. 사고가 나서…….”
꽉 막힌 도로에서 보험사 직원 기다리며 회사에 전화했다
누군가 떠날 때마다 마음 깊이 담아두면 편히 살 수 없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세상이 이상하다 내가 이상하다

오늘내일 죽어도 슬프지 않다니 글쎄……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어정쩡하다

「다세대주택」 전문

지금은 많이 나아졌나요?
네. 점점 괜찮아지고 있어요. 

다행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하고 싶은 게 참 많아요. 우선 7월이 가기 전에 시 한 편을 완성하려 해요. 그러면 앞으로 계속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9월에 출간될 기시미 이치로 작가의 신작을 잘 마무리해서 편집자로서도 성과를 내고 싶고.(웃음) 무엇보다 몸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최지인
1990년 경기도 광명에서 출생했다. 광명과 익산 그리고 안양에서 자랐다.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에서 극작을 전공했고, 2013년 <세계의 문학>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17년에 첫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를 냈으며, 창작 동인 ‘뿔’로 활동 중이다.

진정은  biz99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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