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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시 읽어주는 멋진 누나' 신미나 시인
  • 진정은
  • 승인 2018.07.1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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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미나 시인

시가 불쑥 끼어들 때가 있다. 단골집 요리를 와앙- 입 안 가득 채워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 때, “이대로 먼지가 되어도 나쁠 것 없겠다” 싶을 때. 기분 탓인지 책장에 꽂힌 시집 모서리가 유독 삐죽하다. 뜻 없이 훌훌 책장을 넘겨 본다. 나를 고요히 들여다 보는 일. 어느 새 다정한 말이 비정한 마음을 끌어 안고, 품 넓은 말이 조용히 나를 백허그하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끙차,하고 일어나 양치질하는 힘을 얻을 수도. 그래서 우리는 시를 가까이 두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가 우리 삶을 더 낫게 해준다고 믿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시가 어려워지는 게 아쉬워요. 사실 시는 높은 데 있지 않거든요. 문학이 고고한 것으로 남지 않았으면 해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만난 신미나 시인(40)은 시가 좀더 쉽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 시의 즐거움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 고맙다. 시가 어려운 우리에게 시를 읽어줘서.

시 높은 곳에 있지 않아
독자들이 시와 가볍게 만나길
삶과 밀착된 작품 쓸 것


“독자와 시, 쉽게 만났으면”


연희문학창작촌에는 무슨 일로 온 건가요?
여기 머물면서 집필에 집중하려고요. 3개월 정도 지낼 계획이에요. 오늘이 입주일이라 짐을 다 싸왔어요.

보통은 어디서 작업하는지.
주로 카페에서 작업해요. 집에서는 잘 안 돼요. 아무래도 고양이가 있으니까. 노트북을 켜면 키보드 위에 앉거나, 잠깐 자리를 비우면 화면에 ‘ㄱ,ㄷ,ㅅ,ㅏ,ㅜ’ 이런 게 써 있잖아요.(웃음) ‘좀더 집중해서 작업해야겠다’ 싶어 이곳을 찾았어요.

그렇군요. 어떤 작품을 집필 중인가요?
출판사와 책 계약을 했어요. 중학교 1,2,3학년 교과서에 실린 시를 기반으로 웹툰을 그리는 작업을 맡았는데. 책이 학년 별로 한 권씩 총 3권을 만들 예정이고, 올해 늦가을쯤 중학교 1학년 도서가 먼저 나와야 해서 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어요.

책 내용이 궁금한데.
기본적인 스토리는 학생과 전설의 동물이 시 모험을 떠나는 거예요.

시 모험이요?
잔디라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주인공이에요. 강릉이 고향인데 서울로 전학 와서 해태라는 전설의 동물과 친구가 돼요. 해태는 천상계에 살다가 문학시험을 낙방해 문학적 소양을 쌓으려고 지구에 내려왔고. (웃음) 해태와 잔디의 일상 에피소드와 함께 시를 소개하는 책이에요.

재밌네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웹툰으로 만나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를 입시 위주로 배워서 그런지 김소월, 윤동주 하면 일단 따분해하는 것 같아요. 이건 잘못 배웠기 때문이지 절대 시가 오래돼서 그런 게 아니에요. 교과서에 나온 시도 100년을 뛰어넘는 신선함이 있거든요. 학생들이 늘 정답 찾기 식으로 시를 배우는 게 아쉬웠는데. 지금 하는 작업이 해석의 재미를 느끼는 하나의 방식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시를 재해석해 웹툰화하는 작업은 웹툰 에세이 『詩누이』에서 비롯됐어요. 책에 시인들의 시 여러 편과 작가님의 감상이 그림으로 나오죠.
종이 책이 아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시를 읽으면 어떨까 싶어 시작하게 됐어요. 원래 그림을 좋아하기도 했으니까. ‘시를 좀더 쉽고 다양하게 접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시를 고르고 골라 작업했죠.

그림에 작가님의 이야기가 녹아든 점이 흥미로워요.
책을 통해 어떤 답을 주고자 한 건 아니었어요. 다만 '저는 이런 식으로 읽은 거예요'라고 적어둔, 화살표 같은 거예요. 말하자면 “연희동 오실 때 이렇게 오실 수 있어요. 본인에게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을 찾아서 가도 돼요!” 이런 정도? 개인의 느낌대로 시를 소화하길 바랐죠.

그렇군요. 책 반응이 좋은 것 같은데.
주인공 싱고가 30대 직장인이에요. 그러다 보니 제 세대 독자들이 공감을 많이 했어요. 특히 교육 현장에 계신 분들의 반응이 좋았죠. “신선하다”, “웹툰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시가 해석될 수 있음을 알았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 신미나 시인

시를 웹툰으로 푼 시도는 이전에 없었죠. 그래서 더 주목받는 것 같고.
그림이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갈수록 책임감이 커져요. 시를 웹툰으로 푼 경우는 처음이니까 사람들에게 일종의 기준이 될 수 있잖아요. 작업하면서도 ‘아마추어처럼 하면 안 되겠다’ 싶어 매일 7시간씩 그림 연습을 했어요. 안 그럼 늘지 않으니까. 힘든 마음에 '내가 그림 전공도 아닌데 왜 이렇게 어려운 걸 하고 있나' 생각도 했지만 막상 하고 나니까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었구나’ 싶어요. ‘내가 더 단단해져야겠다, 유연해져야겠다’ 생각해요. 손가락 아프다고 징징거릴 수만은 없어요.


“시를 읽는 삶과 읽지 않는 삶은 달라”


『詩누이』작업할 때 이야기가 궁금해요. 글쓰기와 그림은 엄연히 다른 작업이잖아요.
사실 시 쓰기와 그림 그리기가 영 동떨어진 작업은 아니에요. 시를 읽고 어떤 감상이 이미지로 맞아 들어가면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는데. 그 과정이 시 쓰는 과정과 어느 정도 닮았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시와 달리 웹툰은 재미적 요소가 필요하잖아요. 일부러 노력했죠. SNS와 별로 안 친한데 매일 살펴보고, 예능프로도 챙겨보고.(웃음) 요즘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공부 차원에서요. 그러면서 작업 자체도 더 재밌어진 것 같아요.

더 재밌어졌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시만 쓸 때는 자의식 과잉에 우울함도 있었죠.(웃음) 그때 만났던 친구들이 지금 보면 놀라요. 인상이 바뀌었다고, 밝아졌다고 해요. 웹툰을 그리는 행위가 저를 유연하게 해준 거 같아요.

웹툰이 그런 역할을 했군요.
시 쓸 때는 이런 재미를 잘 몰랐어요. 내가 고독해서 남 볼 여유가 없었죠. 그런데 갈수록 두루두루 살피고, 마음을 더 내주고, 마음도 받고 그래요. 예전에 못 봤던 것들을 많이 보죠. 유머가 지혜인 것 같아요.

시를 다양하게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웹툰 에세이를 작업했다고 하셨죠. 독자가 색다른 방식으로, 가볍게 시를 만나는 일이 작가님께 큰 화두였나요?
개인적으로 시가 어려워지는 게 아쉬웠어요. 대중이 접근하기 힘든 분야로 여기는 분위기잖아요. 사실 시는 높은 데 있지 않거든요. 80년대에는 시가 많은 사람에게 힘이 되는, 일종의 멘토였는데 지금은 소수에게만 그런 것 같고.

시가 소수의 전유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시는 문학 전공자만 누리는 특권이 아니에요. 혹자는 “문학은 순수한 거야, 범인이 모르는 감각의 세계야”라고 할 수 있지만 제 입장은 그래요. 헝가리 사람들은 바지 뒷주머니에 시집을 넣고 다녀요. 그게 일상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역사 자체가 너무 빠르게 흘렀어요. 또 당장의 생존을 걱정하는 게 지금 현실이라, 시를 사치로 여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시집 고를 여유조차 충분히 갖지 못하는 것 같아요.
상황도 상황이지만 우리가 문학을 멀리 있는 것, 높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더 그래요. 저는 기본적으로 시를 읽는 세상이 나쁘지 않다고 보거든요. 인권이나 감수성에 시, 음악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시를 쓰고 읽는 그런 평등이 이뤄져야 하는 거죠. 시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권리 같아요.

시가 삶에 필요한 권리다.
물론 시를 읽는다고 해서 삶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못 해요. 다만 시를 읽는 삶과 읽지 않는 삶은 확실히 다르죠. 시가 타인을 이해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삶과 문학이 동떨어져, 시가 고고한 것으로 남지 않았으면 해요.


“누구나 각자만의 싱고가 있다”


『싱고,라고 불렀다』가 첫 시집이죠. 싱고가 뭔지 찾아보고는 맘이 아팠어요. 

십년 넘게 기르던 개가/돌아오지 않았을 때/나는 저무는 태양 속에 있었고/목이 마른 채로 한없는 길을 걸었다/그때부터 그 기분을 싱고,라 불렀다

<싱고> 부분

제가 만든 조어인데 가끔 “싱고가 무슨 뜻이야?”하고 질문을 받기도 해요. 정확히 어떤 뜻인지 정의하고 싶은 거죠. 슬픔인지 상실감인지, 한 단어로 정리하려고 하는데. 그러면 의미 없지 않나요? 정리하려 하면 시는 의미 없는 것 같아요. 시를 감상하고 국어사전에도 없는, 나만의 싱고는 무엇인지 떠올려보는 거죠. 다들 각자만의 싱고가 있을 테니까.

각자만의 싱고요?
봉평에서 강연한 적이 있어요. 중1 학생들과 ‘나만의 싱고’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죠. 국악을 하는 한 친구는 국악대회가 있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대회 하루 전날 숙소에서 머물면서 건물 불빛을 본 순간, “이런 게 싱고 같다”고 표현하더라고요. 또 어떤 아이는 친구 이야기를 꺼냈는데. 진짜 친한 친구가 나랑 소원해지고 다른 친구랑 친할 때. 그때의 감정을 싱고,라고 표현했어요. 각자 이렇게 좋은 해석이 있는데! 답안 찾듯이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일반 독자의 관점으로, 첫 시집의 시가 어렵지 않다고 느꼈어요.
시를 쓰면서 화려한 단어 뒤에 숨지 않겠다는 다짐했어요. 내 경험에 알맞은 그릇으로 소박하게 담길 바랐어요. 현란한 수사나 비유 쓸 수 있죠. 하지만 제 체질은 아니에요. ‘가장 최소한의 것으로, 그럴듯한 단어 뒤에 숨지 말아야겠다’하면서 썼던 것 같아요.

  ▶ 신미나 시인

다소 평이해 보일 수 있어도 화려한 수사는 쓰고 싶지 않았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수사든 비유든 겹겹의 미스터리한 장치 뒤에 숨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어떤 문학작품이든 독자와 일대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자가 '이거 내 이야기다', '나를 위해 쓰였다'고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요. 시를 읽고 내 경험과 감정을 불러올 수 있는 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더 삶에 밀착된 날것을 담고 싶었고, 언어적으로 더 걸러 보고 싶었죠. 그러다 보니 시도 짧아졌어요. 두 번째 시집에서는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네요.(웃음)

작가님의 시 중에 <연두부>가 사랑받는 것 같아요. 블로그나 SNS에서도 꽤 보여요.
SNS 사용이 많아지면서 주로 시 안에서 예쁘장한 구절만 떼어서 읽혀요. 가끔은 마음 쓰릴 때도 있죠. 전문이 아니라 한 부분만 잘린 느낌이라.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읽는 게 뭐 나쁜가?’ 싶기도 해요.
 
부드럽고 단순하게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十자 모양으로
가른 적도 있고
조그만 삽 같은
스푼으로 뜬 적도 있다

홈이 파이고 물이 모이고
빛이 고인다

혀를 대봐요
희고 매끄러운 내 몸에
그냥이라는 말은
싱겁긴 해도

당신이 괜찮아, 라고
말해 준다면
이 세계는 순결하게
무너져 버려도 좋을 텐데

<연두부> 전문

시인이 좋아하는 시는 뭔가요?
<묘의 함(函)>이라는 시에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시인이 시를 다 알고 쓰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 어떤 문장을, 세계를 자신도 모르게 캐낸 사람이 시인인 것 같기도 해요. ‘묘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 헝겊 인형이 대신 말을 한다’는 구절이 있어요. 시를 쓰는 게 묘라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과 같아요.

묘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
헝겊 인형이 대신 말을 한다

오색 종이로 만든 가마에
고깔모자를 쓰고
묘는 검정으로부터 왔다

묘의 주머니는 작고
이따금 탄내가 난다
주머니 속에는 타다 만 볍씨가 있다

묘의 상자 속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가 있고
정글짐 꼭대기의 해가 타고 있다

묘가 다시 찾아오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목에 난 빨간 점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볏단처럼 가벼운 묘의 머리카락에
불을 붙여줄 것이다

목젖에 손을 대면
방울뱀처럼 목을 떨 것이다

<묘의 함(函)> 전문

두 번째 시집은 언제쯤 나올지 궁금해요.
시를 다 모으기는 했는데 걸러내는 작업이 좀 걸릴 거에요. 올해 말쯤에 시집을 내려고요. 내년에는 시를 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시 쓰는 게 삶의 의미가 되기도 하니까. 지금 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원류는 시에 있으니까 그걸 잃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 신미나
1978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 쓸 때는 ‘신미나’ 그림 그릴 때는 ‘싱고’다. 10년 넘게 고양이 이응이의 집사 노릇을 하고 있다.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와 웹툰 에세이『詩누이』를 썼다.

진정은  biz99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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