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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생의 맛 기록하는 '고독한 미식가' 박수서 시인
  • 진정은
  • 승인 2018.07.1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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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서 시인

먹고 사는 일이나
시를 짓는 일이
버겁기는 한가지다

몇 해 삶은 아팠지만,
시는 아늑했다

이제 시가 시시해지는 날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일이다

『해물짬뽕 집』 ‘시인의 말’

올 초 박수서 시인(45)은 시집『해물짬뽕 집』을 출간했다. "혼밥 혼술하면서 쓴 시를 담았다"는 시인. '고독한 미식가'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는 다음 장면을 상상했다.


오래된 중국집 식탁에 홀로 앉아 방금 막 나온 뜨끈한 짬뽕과 마주한 사내. 냄새를 맡고, 알알한 국물 한 술 떠먹고는 면을 곱씹는다. 후루룩 소리, 숟가락과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 들리고. 문득 그리운 이의 이름, 밥과 밥벌이의 상관관계, 쓸쓸함이 뒤섞여 조금 분주해진 시인의 머리 속.


아마도 그렇게 시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박수서 시인은 "내 시가 누군가의 안주나 밥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마음이 허기질 때, 묵묵히 삶을 써내려 간 미식가와 합석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고독은 창작의 원동력
짬뽕집처럼 편한 시 쓰고 파

“혼밥 혼술이 창작 밑바탕 돼”


안녕하세요. 전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오셨어요.
가족들과 전주에서 살아요. 전라도가 근무지다 보니 서울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올 초에 시집『해물짬뽕 집』을 내셨어요.
네. 4년 만에 새 책을 냈어요. 설레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래요.

아쉽다는 건 무슨 뜻인지.
시집을 발간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에요. 새 책이 나오니까 두근거리는데 한 번 인쇄되면 끝이잖아요. 다른 표현으로 썼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요.(웃음)
 
『해물짬뽕 집』 붉은 색 표지가 인상적이에요. 보다 보면 허기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책 제목이 『해물짬뽕 집』이라 표지 색도 맞췄어요. 입맛을 자극하는 색감이라 마음에 들어요.

그렇군요. 『해물짬뽕 집』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요.
직업상 발령이 많은 편이에요.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직장 근처에서 머무는 경우가 잦죠. 그래서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먹는 일이 허다한데. 혼밥 혼술하다 쓴 시를 엮었어요.

시집에 <고독한 미식가>라는 시가 있던데. 작가님이 고독한 미식가였네요.
그런 셈이죠.(웃음)

시 57편이 실렸어요. 책으로 묶는 데는 오래 걸렸나요?
시를 오래 쓰고 오래 수정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사실 벼락치기를 잘 하거든요.(웃음) 평소에 페이스북이나 메모장에 순간순간 생각나는 몇 줄을 적어두고 나중에 그것들을 끌어다 붙여서 만들죠. 벼락치기처럼 집중해서 만들었는데 한 6개월 정도 걸렸어요.

음식을 주제로 한 시가 많아요. <머우 무침>, <삼겹살>, <새우젓>, <잡탕밥>, <고독한 미식가> 등한 파트가 전부 음식 관련 작품인데.
원래 음식 시를 자주 써왔어요. 이전에 냈던 시집에는 뒤쪽에 배치했는데 이번에는 맨 앞 쪽에 두었어요.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 앞에 나오면 ‘독자들이 첫 장부터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또 먹고 사는 게 가장 중요하잖아요.(웃음)

<해물짬뽕 집>이라는 시가 시집 제목이에요.
중국집은 사람들이 편하게 들락거리는 장소잖아요. 출출할 때 생각나고, 간단히 술 한잔하고 싶을 때도 그렇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부담 없는 중국집처럼 사람들이 편하게 읽는 시집이면 좋겠다 싶었어요. 시 전체를 모아두고 봤을 때 가장 어울리는 제목이기도 했고요. 또 <해물짬뽕 집>이 제게 애틋한 시에요.

애틋한 이유가 뭔지 궁금해요.
부안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요. 자주 가는 중국집에 들러 짬뽕을 안주 삼아 반주를 했어요. 한잔 한잔 마시는데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더군요. 세상을 떠난 선배 시인이요. 그때 든 생각에 나는 혼자 술을 먹고 있는데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었죠.

  ▶ 박수서 시인

그리운 사람이 내 곁에 있는 느낌이었나 봐요.
맞아요. 마치 그 사람이 내 앞에 있는 듯 했어요. 선배가 혼자 등산가는 걸 좋아했는데. 등산 갔다 와서 홍주를 딱 까서는 내 앞에 따라놓고 어느 순간부터 같이 먹는 거에요. 일루젼처럼.

 

혼밥이 편한 까닭은 밥상의 세상을 혼자 벌컥 벌컥 말아 먹을 수 있어서다
눈치 보지 않고 밥상의 질서를 좌지우지할 수 있어서다
눈칫밥이 지겨운 날은 훌훌 털고 혼자 식당을 찾는다

부안군 문정로를 걷다가, 행정구역 명칭인 문정 앞에서 가슴이 아리다
한때 도반이었고 한때 스승이었던 시인 문정
그가 매몰차게 던져버린 세상을, 이 길을
강아지풀 꼬리가 흔들리도록 쿵쿵 지난다
당신 이름 너무 벅차 생각하지 않겠다며
굴삭기처럼 보도블록을 찍으며 앞만 바라보며 걷는다

삼선해물짬뽕밥에 소주 한 병을 비운 사이
말도 안 돼, 그가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
당신 언제 내 앞에 앉아 있었던 거야?

방긋 웃으며 홍주 병을 건네주는 그가
오늘도 혼자 산에 올랐는지
붉은산꽃하늘소 한 마리를 머리에 이고 있다

<해물짬뽕 집> 전문

 

그리운 선배 이야기가 담겼군요.
그때 그 환상 같은 경험을 담은 시라서 애틋하고, 애잔하죠.

 

“나이 먹을수록 쉬운 시 쓰게 돼”

 

“영혼은 퇴행하고/아픔은 진화했다”(‘마흔 넷’ 전문) “사는 게 뭐라고/그까짓 인생이 뭐라고”(‘잡탕밥’ 부분). 시를 보면 냉소와 고독이 느껴져요.
지금까지 시 쓰면서 공통적으로 가져 온 감정이 고독 아닌가 싶어요. 단순히 외로움은 아니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독은 우주적인 외로움 같아요.

작가님이 느낀 고독함, 시를 쓰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나요?
막 해소되지는 않아요. 약발 좋게 치유 되지는 않고. 시 자체가 고독하잖아요. 저의 고독과 시 쓰는 고독이 같이 쭉 가는 것 같아요.

시에서 고독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에요. 가족 이야기도 많이 나오던데.
먹고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유가 가족이니까요. 식구가 없다면 밥벌이하는 데 아등바등할 필요 없거든요. 결국 식구 때문에 버티고 이겨내고 살아가는 거죠. 내가 작은 우주면 가족은 큰 우주에요.

『해물짬뽕 집』이 네 번째 시집이에요. 이전 시집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요.
이전 시집들에 비해 조금 더 쉬워졌어요. 

작가님이 작품을 좀더 쉽게 썼다는 의미인지, 독자들이 읽기에 쉽다는 건지.
둘 다요. 제가 쉽게 쓰기도 했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편이죠. 먹고 사는 이야기가 많아서 시를 전혀 모르는 분들에게도 잘 읽힐 거에요. 예전 시는 어두운 반면 이번 시집은 상대적으로 밝아요.

시가 더 쉬워진 이유가 있나요?
나이를 먹어서.(웃음) 젊을 때는 겁 없이 쓰기도 했고,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시를 썼던 것 같아요. 지금은 조금 더 쉬운 게 좋아요.

이전 시집『박쥐』, 『공포백작』,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을 통해 얻은 별명도 많아요. 박쥐, 뽕짝시인으로도 불리던데.
박쥐는 생활 패턴이 박쥐 같아서 동문들이 그렇게 불렀어요. 밤에 잘 돌아다녀서.(웃음)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부터 뽕짝시인으로 알려졌죠.

어떻게 뽕짝시인으로 불리게 된 건지.
중학교 때부터 뽕짝을 좋아했어요. 대학교 신입생 장기자랑에서 트로트를 불러서 선배들 기겁하게 만드는 학생이었죠. 자연스럽게 트로트에서 시상을 얻고, 노래 제목을 차용해 시를 쓰기도 했죠. 제 감성 자체에 뽕짝끼가 있는 것 같아요.

뽕짝시인라 불리는 게 싫지 않겠어요.
엄청 좋죠. 트로트도 좋아하고 시도 좋아하는데 두 개를 합치니 얼마나 좋아요?

뽕짝시인의 해물짬뽕 시. 어쩐지 잘 어울려요. 대중적이면서 서정적인.
기본적으로 서정적인 시 문법을 구사하고 있어요. 그런데 또래 시인들의 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게 있거든요. 아직 40대인데 50 넘은 시인의 관록이 있다고들 하더라고요. 제가 읽어도 젊은 시인들의 시 문법과는 달라요. 제가 겉늙은 건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중국집처럼 편한 시집 됐으면”

 

시집 내면 주변 동료들 반응은 어때요?
우리 직업군에 시를 쓰는 사람들이 워낙 드물어요. 그래서 신기하게 생각하죠. 한편으로 부러워하기도 해요. 본인들은 매일 출퇴근하는 것 말고 특별한 일이 없는데 뭐라도 가지니까 부럽다고.

  ▶ 박수서 시인

일과 창작 생활이 결 자체가 다르죠. 흥미로울 것 같아요.
근무만 하다 문단 모임에 가면 정말 다른 삶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재밌죠. 직업은 따로 있지만 진짜 업은 시인이라고 생각해서 창작 생활이 더 특별하기도 하고.

'진짜 업'은 무슨 의미인가요?
스무 살부터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지금껏 시에 대한 애정은 계속 됐고. 중독 상태라고 할까요? 제 인생에서 시가 없으면 허전하니까 진짜 업인 느낌이죠.

시집이 4년 주기로 나왔어요. 4년 뒤에 다섯 번째 시집을 볼 수 있는 건가요? 어떤 시를 짓고 싶은지 궁금해요.
4년 주기를 계획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웃음) 이번 시집을 낸 후로 드는 생각은 앞으로 음식 시를 계속 쓰고 싶다는 거에요. 음식과 가족 이야기. 이런 방향성으로 더 탐구해볼 작정이에요. 더 느지막에는 감성시집을 내고 싶어요. 한 50대쯤?

감성 시인, 멋질 것 같아요.
이정하 선배의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같은 시집을 쓰고 싶어요. 그 나이쯤 되면 누가 뭐라고 해도 못 들은 척 할 수 있으니까.(웃음) 문단 눈치 안 보고 연애시집 한 번 써보고 싶어요.

연애시집 기대할게요. 그전에『해물짬뽕 집』이 어떻게 읽히길 바라는지 한 마디해주세요.
중국집처럼 편하게 찾는 시집이었으면 좋겠어요. 식구들의 밥상이든 회사 동료들의 술상이든 상관없죠. 제 시가 누군가의 시간과 함께 하는 안주나 밥이 되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박수서
1974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마구간 507호 외 2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박쥐』, 『공포백작』,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이 있다. 시와 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진정은  biz99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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