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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은경 시인 “지금, 쓰기에 충실하고 싶어요”
  • 진정은
  • 승인 2018.07.2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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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은경 시인

“묵묵히 시 쓰는 친구예요.” 한 시인의 소개로 오은경 시인(27)을 만났다. 등단 1년 차인 오은경 시인은 “지금 대학원을 다니며 시 창작에 몰두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시인은 시종일간 덤덤했다. 시 쓰는 일이 어렵지는 않은지, 문장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 물어도 도통 어려움을 토로하지 않았다. ‘힘들어도 어쩔 수 없어요, 다만 내 것을 할 뿐’이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시인과 이야기하면서 ‘묵묵히 시 쓴다’는 말이 너무도 명확히 다가왔다.


오은경 시인은 “지금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가진 고민에 보다 충실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루에 처리해야 할 수많은 일 중 언제나 시가 먼저라는 시인. 열렬히 시를 편애하는 시간이 언젠가 한 권이 되어 만날 수 있기를.
 

시 쓰는 과정, 치유 같아
나만이 쓸 수 있는 시 쓰고싶어

 


“이별, 헤어짐을 깊이 생각하던 때”


당선된 지 얼마 안 됐어요. 인터뷰는 처음일 것 같은데.
대학교 선배였던 시인이 “인터뷰 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을 주었어요. 어떤 뜻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제 생각해서 연락을 준 것 같아 굉장히 감사해요. 조금 낯설기는 하네요.(웃음)

당선하면 소감을 쓰잖아요. 작가님은 당선소감에 뭐라고 썼나요?
나름 비장한 마음으로 썼던 것 같은데.(웃음) 지면을 빌려 고마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했어요. 창작할 때 도움을 주었던 분들이죠. 시 쓸 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어떤 이야기인지?
시가 되기 전에 어떤 발상을 하잖아요. 발상이 될 만한 화두를 사람들과 이야기함으로써 소재로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제 생각이 모순되고 허점이 많았는데 대화를 통해 정리할 수 있었거든요.

굉장히 고마웠겠어요.
그렇죠. 정말 좋은 태도로 제 이야기를 들어준 덕분에 시를 계속 쓸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생각해요.

혹 심사평도 기억해요?
저를 뽑아준 분이 이근화 선생님, 문태준 선생님인데. 제 시 안에 있는 관계성을 언급하셨어요.

관계성이라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이요.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이별의 순간이라든지, 이별한 이후에 인연이 어떤 식으로 지속된다는 거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당시에 저 스스로도 이별 이후에 남겨진 것을 고민하기도 했고요.

당시 헤어짐이나 이별을 오래 생각했나 봐요.
네. 대학 졸업하고 나서 특별히 싸운 것도 아닌데 사람들과 연락이 안 되거나, 의도치 않게 멀어진 경우가 많았어요. 그게 아프게 다가왔죠. 특정인과의 이별이라기보다, 여러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헤어짐에 관해 깊이 생각하던 때였어요.

 

어제와 같은 장소에 갔는데
당신이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내가
돌아갑니다

파출소를 지나면 공원이 보이고
어제는 없던 풍선 몇 개가
떠 있습니다
사이에는 하늘이
매듭을 지어 구름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풍경 속을
가로지르는 새 떼처럼
먹고 잠들고 일어나 먼저 창문을 여는 것은
당신의 습관인데 볕이 내리쬐는
나는 무엇을 위해
눈을 감고 있던 걸까요?

낯선 풍경을 익숙하다고 느꼈던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내부가 보이지 않는 건물 앞에
멈춰 서 있습니다
구름이 변화를 거듭합니다
창문에 비친 세계를 이해한다고 믿었지만
나는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당신보다 나는 먼저 도착합니다
내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당신에게
나는 돌아와 있습니다

 
<매듭> 전문


“시 쓸 때 억압받지 않았으면”


등단이 쉬운 과정은 아니잖아요. 잘 버텨서 등단을 이뤘는데. 습작할 때는 어땠어요?
대학 졸업하고 창작에만 몰두했어요. 사회적으로 보면 취업할 나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등단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죠. 압박감을 느끼면서 2년 동안 글만 썼어요.

 

  ▶오은경 시인


2년간의 창작 과정이 궁금해요.
소설 쓰는 친구에게 습작 시를 보여줬어요.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고 자극도 많이 됐죠. 대학교 4학년 때 김언 시인이 지도해 주셨거든요. 따로 일 년 정도는 메일로 시 다섯 편을 꾸준히 보냈어요. 선생님께서 여러 조언을 많이 해주셔서 시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작가님의 글이 처음 시 형태를 가진 건 언제였는지 기억해요?
원래 소설을 썼는데 대학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됐어요. 아마 대학교 2학년쯤일 거에요. 당시 김혜순 선생님 시집을 열심히 읽었거든요. 그때 썼던 시가 가장 완성도를 갖춘 시의 꼴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군요. 시인 지망생일 때 선배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자극을 받고는 하잖아요. 작가님은 어떤 시를 주로 읽었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이상, 김혜순, 이승훈 시인을 좋아해요. 이상의 <3차각 설계도> 연작시 중 ‘선에 관한 각서-5’가 있어요. 시를 말하고 있는 시라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김혜순 작가의 『죽음의 자서전』이나 『슬픔치약 거울크림』정말 좋아요. 상상력도 흥미롭지만 시인의 몸을 무한하게 확장시키는 시라서 맘에 들어요. 이승훈 시인의 시는 21살, 휴학할 당시 위안을 많이 받았어요. 제 상태가 불안정했거든요. 세련되고 모던하고 간결하면서 현실과 비현실 넘나드는 시편을 읽으면서 위로받았던 것 같아요. 초기 시집 『너라는 환상』, 『너라는 햇빛』이나 『서울에서의 이승훈 씨』 전부 좋은 기억이 있어서 좋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또 위로되는 것들 있어요?
글쎄요. 음…좋아하는 건 영화, 음악이에요. 텐타시온 아세요? 미국 래퍼인데 얼마 전에 총기 사고로 사망해서 안타까운데. 이 래퍼 음악이 굉장히 우울해요. 위로가 된다기보다 같이 우울해져요. 이 사람이 어린 시절에 정말 불행했거든요. 불행한 환경에서 싸움도 많이 했고 문제도 일으켰는데. 과거의 자신과 대면하고 더 좋은 쪽으로 나가려고 노력하고 싸우는 과정이 음악에 담겨있어요. 그게 가사에 드러나는데 우울하지만 솔직하고 정말 좋아요. 얼마 전에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를 봤어요. 영화라는 장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냈다고 생각되는 수작이에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더군요. 재밌는 체험이었어요.

요즘 창작 생활은 어때요? 대학원에 다닌다고 들었는데.
대학원에서 합평 수업을 들어요. 시 쓰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합평하면서 제가 시라고 생각하는 형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제 시 합평을 듣는 과정에서도 자극을 받아요.

시 쓰는 데 힘이 되겠어요. 창작할 때 어떤 스타일인지 궁금해요.
한 작품 완성하는 데 꽤 오래 걸려요. 퇴고 자체는 오래 안 걸리는데. 하루를 잡아놓고 쓰다 보면 진전이 안 되는 시기가 자주 찾아와요. 자주 보되 오래 쓰는 편인데 지금보다 작업 방식이 좀 유연했으면 좋겠어요.

유연했으면 좋겠다는 건 어떤 모습인지.
시가 다루고 있는 주제나 형식을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잖아요. 제가 다룰 수 있는 이야기, 쓸 수 있는 이야기, 작업의 속도까지 포함한 거예요. 시 쓸 때 어디에도 억압되지 않았음 좋겠어요.

창작이 맘처럼 안 될 때도 많잖아요? 잘 안 써질 때 어떻게 하는지.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할 것 같은데.
음...항상 안 써지니까요.(웃음) 일상이에요. 마인드 컨트롤이 따로 없고. 그냥 과작하는 스타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꾸준히 써요. 취업할 수도 있었는데 대학원을 갔잖아요. 글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 환경이 주어진 거니까 열심히 해야죠. 하루에 수행해야 할 일이 꽤 많거든요. 방 청소도 해야 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싶고.(웃음)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첫 번째 자리에 두는 게 시에요.

가장 마음에 드는 시는 뭔가요?
<교통사고>라는 시에요. 이 시는 쓰기 전에 발상하는 작업, 길게 생각을 나열하는 작업 없이 바로 쓰기 시작했어요. 쓸 때 굉장히 몰입했는데 당시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여서 오히려 쓰는 거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배제하기도 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배제했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저는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시를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은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는데. 시라는 장르에서만 드러낼 수 있고 쓸 수 있는 문장이 있잖아요. 시 쓰는 제 목소리를 줄이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시라는 장르에서만 드러낼 수 있는 문장’이라면.
딱히 별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데 다음 문장들이 풀려 나오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때 자유로움을 느끼는데.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럴 땐 쓰는 사람이 기계 같기도 하고. 몰입해서 문장이 풀려 나오는 느낌을 <교통사고>를 쓰면서 경험했어요.

 

내가 들립니까?
나는 들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당신에 대해 모릅니다
내가 보입니까? 사실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수소문했습니다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신들은 많았고 내게

미안하다는 말만 하면 그래서요? 라고 대답할 수 있는데
늦어버린 것 같습니다

당신과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깜빡거리는 가로등 아래에서  
불빛 속에서 당신은 손을 내밀었습니다
당신들은 당신의 셔츠를 움켜쥐고 담벼락으로 당신을 몰아넣었습니다
나는 방관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신은 늘 묵묵부답이었잖아요,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 없었습니다 예전처럼 소리 내 울지
않았습니다 신호가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길을 건너던
당신들 모습이 생각나요 손수건이 떨어졌습니다 오래 간직하던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차들이 지나갔습니다
걸음을 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한순간

나와 마주 서 있었습니다
당신들이 모두 사라진 거리였습니다 텅 빈 골목 앞,
당신을 스쳐 지나왔다는 사실을 방금 알게 되었는데요
당신들은 당신들을 전혀 모릅니까? 내가 운전대를 잡았는데도

왜 서두르지 않습니까?

<교통사고> 전문

 

“매번 새로운 시 쓰고파”


창작과정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하지만 녹록지 않잖아요. 힘들지는 않은지.
안 힘든 건 아니죠. 제가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많이 해요. 초등학교 때부터 서로 믿음이 있어서. 그 친구랑 대화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저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 걱정을 많이 해요. 저도 힘든데.(웃음) 타인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제 생각은 안 하게 돼요.

그렇군요. 앞으로 작가님의 시가 독자에게 어떻게 번졌으면 하는지 바람이 있나요?
제가 쓴 시지만 3자 입장에서 읽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마치 제 시가 아닌 것처럼. 문장을 보면서 저라는 사람이 이상하지 않다고 느끼기도 해요. 나 같은 사람도 있겠지, 싶어서요. 그런 방식으로 내 시가 다른 사람에게 위안이 됐으면 좋겠어요. 독자들도 ‘나 같은 사람도 있구나’하는.

 

  ▶ 오은경 시인

시에 담고 싶은 건 무엇인지.
첫 문장에서 모든 시가 시작하잖아요. 문장이 끝에 갔을 때는 잊고 있던 기억을 건드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 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제가 당면했던 장면이나 생각 등이 보다 명징해지는 순간인 것 같아요.

시가 주는 개인적인 보람이 뭔지 궁금해요.
시가 형식 안에서 논리를 갖추고 말을 하는 거잖아요. 저는 쓰고 나서 불안하거나 힘들지 않았어요. 쓰는 과정이 치유 역할을 해요. 그래서 계속 쓰는 것 같아요.

등단 1년 차 신인 시인이에요. ‘어떤 시를 쓰고싶다!’고 장담하기도, ‘어떤 시인이 되겠다!’하는 확언도 하기 어려운 시기죠. 그래도 지금 위치에서 스스로 하는 작은 다짐이 있다면.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계속 써는 중이라서 계획이 뚜렷한 시기는 아니에요. 다만 바람이 있다면 다작하고 싶어요. 또 저만 쓸 수 있는 것을 쓰고 싶어요. 지금은 순간적이고 일회적인 경험이니까,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더불어 제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나 고민에 보다 충실해지고 싶고. 되도록 매번 새로운 시를 써나가면 좋겠고, 나중에 다시 읽어봤을 때는 지나 보낸 한 시기라며 회상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오은경
1992년 광주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2017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진정은  biz99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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