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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기형 시인, '불편의 필요에 대해'
  • 진정은
  • 승인 2018.08.0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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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형 시인

"독자가 불편한 시를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우리는 시의 매혹을 알 수 있을 거예요."


김기형 시인(37)의 시는 어쩌면 불친절할 수 있다. 예측이 빗나간 예술영화의 엔딩처럼 독자를 당혹시킬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현듯 마주친 불편함은 일상에서 잊고 지내던 지점을 흔들어 깨워, 상기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김기형 시인에게서 당혹스러운 것들의 매혹, 불편의 필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시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독자들,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시 봤으면


“김행숙, 이원 시인 만나 시작(詩作) 열망 커져”


요즘 어떻게 지내요?
올 봄까지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다 지금은 완전히 프리랜서예요. 청탁 받은 일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원래 어떤 일을 했는지.
문화정보 잡지 제작을 하고 대행업도 하는 회사에서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 그리고 원고 봐주는 일을 했어요. 프리랜서로 일한 거지만, 출퇴근에 가까운 삶을 살았고, 6년 정도 일했어요.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했죠. 제가 제일 높이 사는 사람이 회사원이거든요.(웃음) 아침 9시 출근, 저녁 퇴근만으로도 더 말할 것 없이 대단한 것 같아요.


맞아요. 장기 근속하는 분들 대단한 것 같아요.
회사원들과 호흡하면서도 부채의식이 있었어요. 힘들 텐데 다들 너무 멀쩡한 거에요. 저 사람들 때문에 지구가 굴러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랄까. 약간 빚진 마음이었어요.


지금 출퇴근을 안 하는데 어때요?
안정적인 수입이 있다가 없어져서. '그래도 괜찮아 이제 시 쓰는 시간을 가져봐야지'하면서도 생활비는 벌어야지 싶어 별거 다 하고 있어요.(웃음) 항상 핑계 대잖아요. 일 많으면 많아서 못 쓴다고, 쉬면 너무 자유로워서 안 된다고 하고. 양쪽을 경험해봤는데. 회사에서 근무할 때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꽤 많았어요. 일이 익숙해졌음에도 말의 오염이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니까.


말의 오염이라면.
언어를 실용적으로만 사용하면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것도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요. 자꾸 사람들 사이, 나 이런 관계에 셈이 들어가는 방식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직접적으로 당하지 않아도 갑과 을의 대화가 오고 가는 현장에서 부대끼는 게 심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어찌하지 못하고 지나가야 하는 순간이 있곤 했는데, 그런 오염 속에서 말로 위로 받는 일이 거의 없었죠. 언어가 실용적으로만 사용되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작가님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도리어 더 간절하게 시를 쓰려고 하는 거예요.


지하철에서요?
일을 마치고 안녕히 계세요, 하는 순간부터 이걸 어떻게 떨쳐야 하지?했어요. 정말 강렬한 한 문장이 나와 주면 약간 털어 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한 거지요. 지하철에서 많이 썼거든요. 시가 되어서 나왔든 안 나왔든. 그런데 지금 일 안 할 때는 또 잘 안 써지더라고요. 내가 시달려야 쓰는 타입인가? 이런 패턴 가지면 안 되는데 생각했는데. 그런 상황은 잠깐이었던 것 같고요. 요새는 쉬면서 산책도 하고 숨을 고르니 지금의 몸으로 쓸 수 있게 움직여가는 거 같아요.


시 쓰기로 정한 시간이 있다면 꾸준히 쓸 것 같은데. 작가님은 어때요?
음..제가 잠도 좋아하고 혼자 늘어져 있는 것을 좋아해요. 게으른 와중에도 시가 되든 안 되든 한 문장 이상 쓰려고 애써요. 아무 것도 쓰지 않은 날에는 급하게 '나 잔다'라는 말이라도 쓰고 자요.(웃음)

 

  ▶ 김기형 시인

작년에 등단했어요. 돌이켜봤을 때 시 쓰기의 불씨는 언제부터였나요?
제가 인지한 건, 중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혼자서 계속 글을 썼고 본격적으로 집중한 건 20대 중후반이예요. 선물처럼 어떤 기회에 김행숙 시인께 조언과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고, 이후 문지문화원에서 강의를 듣게 됐는데 그때 이원 시인 수업을 들었어요. 두 선생님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됐는데. 너무 틀림 없는 두 분을 만나서 시에 대한 갈망이 커졌죠. 그때 더 느꼈어요. 내가 이것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걸. 그래서 계속 쓰게 됐죠.


“독자가 시에 사로잡혀 읽기를”


작가님을 검색하면 <정오의 의식>이 가장 먼저 떠요.
<정오의 의식>은 시인동네에 발표한 시에요. 시 중에 ‘지금 내보내도 되겠다’ 싶은 것들을 발표해왔죠.


<정오의 의식>에 도와달라는 목소리가 시의 처음과 끝에 나와요.
기도하는 것에 대해 본의 아니게 생각을 많이 해요. 다른 시에도 기도에 대한 이야기가 밑바탕 되었는데. 사실 이 시가 사람들에게 따듯하게는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떻게 읽어도 상관없지만. 저는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는 일이 대체 하루에 몇 번 있을까 싶었어요. 쓰고 나서 돌아보니 ‘도와주세요’를 멈출 수 있는 지점은 왜 안 나오지? 하면서 썼지 싶어요.


나를 도와주세요
세 번

붉어지는 화분 하나와
칼자국처럼 내리치는 빛
반으로 쪼개놓은 과일
오래 숨을 참으면 못 보던 것이 나타날 수 있다

밖이 되려고
흩어지는 얼룩
모여든 바람이 모서리를 돌며
사라질 것을 명령한다

팬케이크는 탁자 위에 벌레들을 모으고 있다
물을 뚝뚝 흘려본다 동그랗게 벌레의 몸이 떠오른다

조용히 발뒤꿈치를 들어올린다
빛이 거둬가는 얼굴이 있다

난간에 다가온 빗금
나뭇가지에 입을 벌린 맨홀들

물구나무를 선다
빨개지는 어둠

발을 뺀다
나를 도와주세요 네 번

<정오의 의식> 전문


어떤 환경에서 쓴 시인지 궁금해지는데요.
몰려서 쓰진 않았어요. 일상 중에 쓴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데 저는 내몰린 자의 심정을 굳이 가지는 것 같아요. 그 심정이 내가 기본적으로 가지는 심정인가 봐요.(웃음)


작가님이 시 안에서 중점을 두는 건 뭐예요?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은 근원적인 그대로를 보고 싶어요. 더 쉽게 말하면 샤먼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이 그대로인지 알려면 나한테 왔을 때 그대로 잘 보여주고 연결하는 것은 샤먼의 지점인 것 같아요.


무엇과 무엇을 연결하는 건지, 또 샤먼의 지점은 무슨 뜻인지.
연결이라는 건 공간이든 단어든 무엇이든요. 내게 오는 것이 그대로일 수 있게 하려면 내가 샤먼의 지점이 되지 않으면 이걸 포착해낼 수 있을까 싶어요. 결국 저라는 몸을 거쳐서 이야기가 나올 거라 저를 완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런 지점을 가지고 있어야 이것들이 저를 관통할 것 같아요. 훼손되지 않고 최대한 그대로 나갈 수 있도록. 그런 지점을 생각해요.


시 쓸 때 어떤 스타일이에요?
사로잡혀서 쓰는 편이에요. 계속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방식이. 시인 중에 한 글자 한 글자 피고름 짜내면서 쓰는 분이 많아요. 저도 안에서 짜기는 하지만 시로 발화할 때는 사로잡혀서 휙 쓰거든요. 나올 때 와! 하고 소리 지르듯 우르르 나오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내 안에서 이야기가 좀 끓어 넘치다가 내 몸 밖으로 열리는데 그때는 하고 싶은 말이 꽉 찬 상태에요. 그걸 모르고 있다가 어떤 이미지가 딸깍하고 겹쳐지면, 풍선 빵빵할 때 바늘로 찌르면 터지는 것처럼 이야기가 터져요. 사로잡혀서 써요.


사로잡혀서 쓴 시. 독자는 작가님의 시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제 시를 정신차리지 않고 읽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제가 정신 차리고 쓰지 않았으니까요. 잘 이해해볼 꺼야, 분석하려 하듯이 준비하고 읽으려고 하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사로잡힌 자의 심정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아, 사로잡혀서 쓴 시니까.
이유가 명확하지 않아도 사로잡힐 적이 많잖아요. 사람도 그렇고 어떤 음식도 그렇고.(웃음) 이성적으로 바짝 정신 차린 경우가 아니잖아요. 그렇게 읽었으면 해요. 사로잡힌 감정으로 시 읽을 때 스르르 열리고 자기 안에 신비한 지점, 뜨거운 화두든 내가 알지 못했던 아픔이든 정신을 놔야 쑥 들어오는 거거든요. 사로잡힌 심정으로 시 읽는 경험도 있었으면 해요.


사로잡히는 경험에 대해 말해주었어요.  작가님에게 좋은 시는 어떤 시인지 궁금해요.
시상이 떠올라서 테이블에 앉았다고 해봐요. 이전에 생각한 무엇이 지금의 이미지와 맞아서 쓰기시작해요. 그런데 맺음이 절대 자기가 모르는 데로 가요. 동선도, 목적지도 없고 그냥 그렇게 따라가는 거에요. 언어를 내가 부리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에는 내 안에 깊은 무의식과 언어가 둘이 협의 봐서, 둘이 저를 데리고 가는 방식으로 쑥 끌려가야 좋더라고요. 하지만 사실 이건 불편한 거지요.


불편하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예술영화를 보면 불편하듯이요. 결말이 없고 예측되지 않는 방식으로 토막 나는 건데요. 사실 시가 발목에서 잘렸는지 머리에서 잘렸는지 그거는 생각하는 사람의 몫이에요. 시인은 손목을 잘랐을 수도 있어요. 읽는 사람은 자기 발목에서 심정적으로 잘렸을 수도 있고요. 갑자기 절단되는 시를 읽었을 때 우리는 시의 매혹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괴로운 지점 하나가 생긴 거고.


괴로운 지점이요?
괴로운 지점이 생겨야 사람이 더 좋아진다고 생각해요. 다들 너무 힘드니까 위로 받고 싶고 격려 받고 싶은 심정은 잘 알죠. 하지만 일차원적인 긍정이나 방식은 오래 가지 못한다고 봐요. 조금 불편한 지점 하나를 들여다보면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그런 점하나 있다는 거와 모르는 건 차이가 커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시도 같이 보면 좋겠어요. 불편에 대해 여러 생각이 필요해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자신이 안 불편하면 타인의 불편도 모르잖아요. 불편한 지점을 알아야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아요.

 

  ▶ 김기형 시인

  
요즘 시인에게 제일 재밌는 건 뭐예요?
저 사든 안 사든 구경하는 거요.(웃음) 요즘은 친구들하고 시간 보내는 게 재밌어요.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나 봐요.
친구의 개념을 새롭게 알게 된 것 같아요. 보통 20대에는 과업이 있잖아요. 입학, 졸업, 취직 등 굵직한 일들이 정해져 있는데. 이때는 크게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오래 들여다 볼 틈 없이  흘러가게 되는 편인데,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당황스럽죠.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고. 그때서야 자기 기호를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저도 친구라는 개념을 크게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시 안에서 친구들이 생겼고. 친구가 뭔지 알겠어요. 친구가 많았던 사람들은 친구를 줄여간다는데, 저는 친구가 없었던 터라 이제 친구를 하나 둘 사귀고 있어요.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해요. 우리는 다 심해에 사는 물고기인데 너무 깊은 곳에 사는 이상한 물고기라고. (웃음) 물 속에 사는데 같은 무늬를 가진 우리가 가끔 마주치는 존재 같다고요. 어디 비슷한 상흔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친구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재밌어요.


“시 때문에 조금 사람이 되어가”


등단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첫 시집을 생각해본 적 있어요?
당장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첫 시집은 중요하니까요. 시작도 안 했는데 괜히 고통스러운 것 같아요. 우선은 시를 꾸준히 발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어요. 문단 내 평균으로 보면 늦게 등단한 것 같기도 한데. 근데 결국 인간이 자기 시간을 사는 거구나, 늦었다고 하면 안 되겠구나,하는 마음이에요. 그냥 내 호흡이고 내 시간이었구나 생각해요.


‘어떤 것에 가까운 시를 써야겠다’ 싶은 게 있는지.
늘 많은 시인이 이야기하는데 제일 공감하는 게, 그냥 모르고 쓰는 거요. 전혀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내용을 이어가는 거. 시작도 깜짝 놀라고, 여기서 끝났어? 하는 당황스러운 시. 모르고 쓰는 것이 가장 시다운 것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해요.


시를 쓰면 뭐가 좋아요?
좋은 점도 싫은 점도 다 있어요. 그런데 시 쓰는 게 그냥 제일 재밌어요. 동료들과 '시를 쓰지 말았어야 할 텐데'라고 넋두리 하기도 하는데. 이거는 너무 숙명적인 거, 피할 수 없었다 하는 거예요. 저도 그런 심정이었을 때가 있었어요. 안 쓸 수 없었나 보다, 하고 받아들이는 거죠. 그렇지만 분명한 건 시 때문에 조금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사람이 되어간다.
썼거나 쓰려는 모든 문장에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책임질 수 있는 것만 나타내고 있나? 두려운 생각이 들어요. 내가 어떻게 이 난처한 것을 계속 들고 있어, 어떻게 앞으로 계속 감당할 수 있겠어, 하면서 늘 우왕좌왕하거든요. 그런데 자꾸 책임을 지려는 방식으로 애쓰게 되니까, 조금 좋은 사람 되려고 하는 거 같아요. 어떤 것이 좋은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그래야 하는 자연스러움을 알게 해준 것 같아요.

 

• 김기형
1982년 서울 출생. 건국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전공/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진정은  biz99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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