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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미옥 시인,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 진정은
  • 승인 2018.08.0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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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미옥 시인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일과다. 시인에게 시는 마음의 일이니까.


안미옥(34) 시인은 기자가 던진 질문에 자신이 쓴 시의 한 구절로 대답하곤 했다. 시구만큼 시인의 마음을 잘 표현한 문장이 없으니 퍽 이해가 된다.


각자 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멀쩡하기 불가능한 날을 통과하며 두렵고, 불안하고, 아프다. 그래서 시인의 마음은 독자에게로 가 ‘비슷한 마음’이 되나 보다. ‘비슷한 마음’은 두려움, 불안함, 아픔 따위를 잠시 더듬고 쓰다듬는다.


파고드는 시를 쓰고 싶다는 시인. 시인이 하는 마음의 일을 오래 만났으면 좋겠다. 


시 읽어주는 독자 고마워
시인으로서 건강한 삶 꾸리고 파


“첫 시집 수상…허투루 쓰지 말아야겠다 생각해”

 

날씨가 많이 더워요. 여름 휴가 다녀오셨나요?
휴가는 아니고, 최근에 강릉에 갔다 왔어요. 장마일 때라 비가 많이 오긴 했지만 맛집이 많아서 잘 놀다 왔네요.

그렇군요. 최근에 기쁜 소식이 있었어요. 제25회 김준성 문학상 수상하셨다고.
아, 네.(웃음) 한 해에 나온 작가들의 첫 시집, 첫 소설집을 대상으로, 분야 별로 한 권씩 뽑아 수상하는 건데요. 올해는 어떻게 하다 보니 제가 받게 됐어요.

늦었지만 축하해요. 첫 시집으로 상을 받았는데 기분이 어때요?
처음에는 안 믿겼어요. 담당자 분에게 연락 받았는데 ‘장난치는 거 아니죠?’라고 물었으니까.(웃음) 제가 겁이 많아요. 좋기도 했지만 부담에서 오는 두려움도 있어서. 글을 좀 더 허투루 쓰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어요. 어째든 딱 한 번 밖에 못 받는 상이니까 감사해요. 같이 후보에 올라온 시집도 다 좋은 작품인데 제가 받아서 송구스러워요.

그렇군요. 요즘은 뭐 하면서 지내시는지.
예술고에서 문예창작학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 외에는 집에 있어요.(웃음) 한동안 아르바이트도 많이 하고 강의도 했는데. 너무 바쁘게 이것저것 하면서 일 년을 보낸 것 같아 조금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싶어 최소한의 일만 하면서 지내요. 작품 쓰는 거에 집중하려 하는데 그것도 맘처럼 안 되네요.(웃음)

가르치는 일은 어때요? 잘 맞아요?
가르치는 일이 부담스럽다가도 막상 수업하면 재밌어요. 아이들도 재밌을지 모르겠는데. 같이 연예인 이야기도 많이 하고.(웃음) 아이들이 시를 잘 쓰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니까 수업시간에 갑자기 울기도 해요. 그럴 때 맘이 아파요. 그 모습이 저 같기도 하고. 아이들한테 그래도 일단 쓰라고, 쓰면 써질거라고 말해요. 이건 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작가님도 학창 시절에 비슷한 경험을 했나요?
저는 일반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문예반 활동을 했었거든요. 종종 백일장에 나갔고 문학특기자로 대학을 갔죠. 지금 친구들과 상황이 똑같지는 않지만 어떤 고생하는지 알기는 하니까. 백일장이 부담될 테고, 글을 계속 써야 하고. 그런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게 조금 짠하기도 해요.


“위로 받았다는 독자들의 말, 고마워”


작년에 첫 시집이 나왔어요. 등단하고 5년만이었죠.
등단하고 5년 동안 제가 격변한 것 같아요. 시기마다 다른 이야기를 했는데. 모아 두고 보니 시 세계가 확확 달려졌음을 느꼈어요. 사실 등단 후에 쓰는 일에 두려움이 많았어요. 글을 쓰고 발표하면 누구나 볼 수 있게 되는데 그게 주는 공포가 있었죠. 동시에 좋은 시 쓰고 싶다, 좋은 시가 뭘까, 하면서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그 생각에 골몰했어요.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아무도 힘들게 쓰라고 하지 않았는데 혼자 스트레스 받으면서 쓴 것 같아요. 몇 년 간은.

시집을 내기 전과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달라진 점 하나 있어요. 제 시가 사람들한테 별로 읽히지 않을 거라는, 사람들이 안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어요. 책 내기 전까지는 일부 마니아 층이 읽어주겠지, 시집 내게 돼서 다행이야, 정도로 생각했고요. 그러다 더 아파하게 됐던 것 같아요. 어느 시점에 가서는 스스로 ‘조금 편하게 쓰자’고 생각했고. 실제로 내가 시에 갖는 태도나 마음이 언어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았어요. 그때 편하게 써진 시도 많았고, 그걸 다 같이 묶었죠. 시를 대하는 태도가 좀 편하게 바뀌었던 것 같아요.

 

안미옥 시인

첫 시집이 꽤 많은 사랑을 받은 걸로 알아요. 여기저기 주목 받고, 읽히고.
생각했던 것 보다 주변에서 잘 읽어주어서 처음에는 얼떨떨했어요.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제가 시를 썼음에도 제 시를 몰랐고, 오해하고 있었고, 내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 쓸 때는 내가 쓰는 거지만 발표하고 나서는 내 작품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그게 뭔지 알 것 같고. 독자들이 고맙더라고요. 시를 읽어주고 시 읽고 이런저런 생각했다, 말해주는 그 마음이 고맙고.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은 작가님 시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해요?
독자마다 다르긴 한데 <9월>, <톱니>, <한 사람이 있는 정오>, <생일 편지>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아무도 몰라주는 마음을 누군가 이야기해준 것 같다, 내가 힘들었던 점을 누군가 대신 말해주는 것 같다,고. 낭독회 때 편지 주는 분도 있고 메일 보내주는 분도 있고요. 주변에 같이 시 쓰는 동료를 통해 듣기도 해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느낌이 어때요?
처음에는 신기했어요. 첫 시집에 묶인 작품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쓴 시들이 많거든요. 내 안을 깊이 들여다보려고 시도했던 시들이 많은데, 내 안에 있는 이야기라 하고 썼는데. 시집이 되고 나서 독자에게 읽힐 때는 내 마음과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로를 주려고 의도한 게 아니었는데 누군가 위로 받았다고 하니까 신기하고 그럴 수도 있구나, 하면서 고마웠어요.

작가님 기억에 남는 시는 뭐예요? 아프게 썼다던지, 제일 쉽게 썼다던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는 <시집>이요. 시집을 묶으면서 쓴 시거든요. 책을 처음 내는 거니까 다 처음 경험하는 거잖아요.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내 안에 부딪힘이 많았는데. 시에 ‘굴레도 감옥도 아니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내가 스스로 만든 굴레에서 반성하고 자조하고, ‘이렇게 쓰지 않겠다’하는 다짐까지 다 합친 말이라 기억에 남아요. 그런 이야기 많이 해요. ‘시는 너무 힘들고, 시가 나를 힘들게 한다. 하지만 시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내가 스스로 힘들게 하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부드럽게 하려 해요. 경직된 상태에서 쓰면 언어도 그렇게 나오니까요. 스스로 읊조리는 주문 같은 거예요.

 

             내가 맛보는 물은 바닷물처럼 따스하고 짜며, 건강처럼 머나먼 나라에서 오는군요 -실비아 플라스 튤립


굴레도 감옥도 아니다
구원도 아니다
 
목수가 나무를 알아볼 때의 눈빛으로
재단할 수 없는 날씨처럼

 

앉아서
 
튤립, 튤립
하고 말하고 나면
 
다 말한 것 같다.
 
뾰족하고 뾰족하다
 
편하게 쓰는 법을 몰랐다
편하게 사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기대하는 모든 것을
배반해버리는 곳으로 가려고
 
멀고 추운
나라에서 입김을 불고 있는 너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건 정말일까
한겨울을 날아가는 벌을 보게 될 때
 
투명한 날갯짓일까
그렇다면
 
끔찍하구나
이게 전부 마음의 일이니

 
<시집詩集> 전문


작가님 시를 보면 감정적인 단어는 거의 나오지 않다시피 해요.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보이는 것들을 읊조리는 것처럼. 그런데 그 주인공이 어떤 상황인지 조금 느껴지는 듯 하고.
그런 평을 많이 들었어요. 너무 슬프다고. 친구들 중에 문학에 관심 없는 친구들이 제 시를 읽으면 너무 힘들다고 해요. 제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시를 쓰게 된 지점이 사람이어서 갖게 되는, 경험하게 되는 슬픔일 수도 있고요. 그런 감정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거를 좋아하는 것도 같고.

시에 ‘없다’는 말이 자주 나와요.
결핍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없음의 상태. <치료탑>이라는 시가 있어요. '지도를 보면 찾아가는 곳에 없어진 건물이 있었다'라고 썼는데. 건물이 없는 건데 ‘없어진 건물이 있었다’ 라고 쓴 거죠. 없는 상태가 저한테 중요했나 봐요.

 

지도를 보며 찾아간 곳에는 없어진 건물이 있었다. 무엇을 결정하는 일은 시간 속에 허리가 잠겨 있게 한다.

누군가의 얼굴을 죽도록 때리는 꿈을 꾸었어. 너는 아침마다 침대 머리맡에서 꿈 이야기를 듣는다.

알람처럼
양털에 파묻힌 양의 얼굴

살아본 적 없는 시간은 일단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무릎 위에서 잠이 든 개처럼

미동 없이

밥을 먹기 전엔 기도를 잊지 않았다. 볕을 쬐며 살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너는 사라져 본 적 있는 외투로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건물에 간다.

뜨거운 볕이 잎을 망가뜨린다.

 
<치료탑> 전문

 

“나에게, 독자에게 파고드는 문장 쓰고파”


시인마다 영감을 얻는 활동이 있잖아요. 작가님은 어때요?
저는 시집 많이 봐요. 신간 시집은 웬만하면 다 읽으려고 해요. 최근에 이수명 시인 시집이 나왔어요. <물류창고>라고 제목부터 건조하잖아요. 시로 쓸 수 있을까, 싶은 느낌인데 그걸 시로 만드는 게 재밌고. 저랑 다른 결을 가져서 흥미로워요. 인식의 확장 같은 느낌? 다른 차원의 감각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읽으면 기분이 되게 쾌적해요. 다른 결을 가진 시인의 시를 읽을 때 재밌어요. 제가 가지고 있지 못한 언어들이니까 신기해요.

인터뷰하는데 ‘재밌다’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시를 쓰고 읽는 일이 작가님께 ‘재밌는 작업’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쓴 시 구절 중에 '무엇이 만들어질지 모를수록 좋았다'가 있어요. 그 태도 같아요. 쓰기 전에는 고통스럽고 다 쓰고 나면 이런 걸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재미가 좋았어요. 시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읽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이 일상을 살 때 필요하지 않은 감각이지만 시 쓸 때마다 발휘되는 감정의 층위들이 있어요. 그런 걸 간접 경험하는 것도 좋고, 쓰는 것도 재밌어요. 시를 쓰지 않았다면 저 자신이나 삶에 대해 이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요. 사람, 삶, 나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해서 그게 시 쓰는 것과 결이 맞는 것 같아요.

 

  ▶ 안미옥 시인

시 말고 또 흥미로운 것들 있어요?
예전에는 미드를 많이 봤어요. 그런데 고정된 상태에서 뭔가를 본다는 게 체력소모가 크잖아요. 그래서 오래는 못해요. 가끔 영상물도 보고, 전시도 많이 봐요. 최근에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류이치 사카모토의 삶을 다룬 다큐 영화를 봤어요. 정말 좋은 거예요. 유명한 예술가인데도 매일 피아노 기본 연주곡을 연습하고, 암에 걸렸는데도 작품활동을 계속해요. 수재민이나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자들을 찾아 위로해주고. 그런 모습이 감동이었어요. 예술가가 사회문제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지점을 보면서 자극 받았어요.

요즘 시 쓰기는 어떤지 궁금해요.
이제 써야 되는데.(웃음) 요즘은 재밌는 시 쓰고 싶어요. 익숙한 걸 쓸 때보다 새로운 걸 발견할 때가 재밌어요. 대단히 다른 건 아니고 삶과 나, 주변을 조금 다르게 볼 줄 알면 재밌어지거든요. 그런데 조금 다르게 보는 게 어려우니까요. 부담 갖지 않고 뭐든 써도 되고, 쓰고 싶은 걸 얼마든지 써도 된다, 그 생각 가지려고 해요.

올해는 특별한 계획 있나요?
산문집과 시집에 실릴 시를 쓰면서 보내려고 해요.

어떤 시인이 되고 싶다, 생각해본 적 있다면 알려주세요.
첫 시집 수상하면서 이런 소감을 썼어요. '시인은 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떤 시간을 통과하면서 시인은 시인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생각이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 생각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제가 그런 이야기를 쓰게 될 줄 몰랐는데요.(웃음) 예술가, 시인이라는 게 본인의 삶이 건강해야지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시인으로서 삶을 더 건강하게 꾸리고 싶어요. 요즘에는 잠깐의 위로도 좋지만 그 책을 읽을 때 독자가 자기 자신에게 더 깊이 파고드는 시를 쓰고 싶어요. 그게 당장 어떤 반응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한 문장이 파고들어서 자신의 삶, 자신에 대해 평상시 하지 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돌아보게 만드는 시를 쓰고 싶어요. 독자도 작가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럴 수 있다면 좋겠어요.

 

• 안미옥
1984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2017년에 첫 시집 <온>을 펴냈다.

진정은  biz99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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