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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설빈 시인, ‘곁에 있어주는 시’
  • 진정은
  • 승인 2018.08.0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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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설빈 시인

이설빈(29) 시인을 만났다. 시인과 사는 일, 시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기자에게는 두 개의 단어가 남았다. ‘내몰리다’, ‘버티다’. 고용 절벽에 내몰리고, 혹독한 경쟁 사회를 버티는 여느 청춘들처럼 시인도 고달픈 날을 가까스로 통과 중인 느낌이었다.

내일이라고 상황이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버틴다. 버티고 계속 걷는다. 걷는 일이 힘겨울 때 보폭을 맞춰주는 이가 있다면 발걸음도 살짝 가벼워질 거다.

“힘들어하는 친구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는 걸 알았어요. 만약 제 시가 어떤 기능이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어요.”

시인과 '나란히 걷는 시', '곁에 있어주는 시'를 이야기했다. 

시 쓰는 몸으로 있고파
독자 옆에 있어주는 시라면 충분해

 

“지금, 흘러가는 대로” 

작가님 근황이 궁금해요.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어요. 글 쓰고, 학생들 가르치고, 공공사업에 참여해 인터뷰도하고 여행보조로 가끔 지방도 다녀오고, 학교에서 조교도 합니다.

가르치는 일은 어때요? 재밌나요?
고등학교에서 글쓰기 강의도 했었고, 학원에서 논술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결론적으로 제 깜냥이 안 되는 것 같아요.(웃음) 지금은 그저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 하면서 흘러가는 대로 살려고요. 그 동안 너무 발악하며 제 게으른 몸을 거스르는 생활을 해서 좀 지쳤어요(웃음).

흘러가는 대로, 좋네요. 시 쓰기는 잘 되어가요?
일 끝나면 카페 가서 시 쓰고 시간되면 집 가서 자고. 6~7년 동안 쭉 이렇게 생활하고 있어요.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기사를 접하기 전부터 저는 그랬거든요. 카페 여행을 자주 했죠. 힘들지는 않고 오히려 내 공간으로 독립하는 느낌이었어요. 집에 저만의 공간이 없거든요. 피곤하지만 오히려 보호받는 느낌이라 좋을 때가 많아요.

20~30대 시인에게 생업과 창작의 조율이 과제인 느낌이에요. 자주 듣는 고민이기도 하고.
제 경우에는 일 자체가 방해되는 건 아닌데 그보다 변환이 어려워요. 일하는 몸에서 글쓰는 몸으로의 변환이 좀 오래 걸려요. 이를테면 생활이 어려울 때는 그게 어떤 식으로든 글에 드러나요. 또 마감 등 글쓰기가 어려울 때는 생활 리듬이 엉키고 몸이 아파요. 그러니까 생업과 창작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죠.

작가님을 검색하면 이서구(29)가 떠요. 동인인가요?
동인은 아니고요.(웃음) 서울시청년예술단 사업이라고, 청년 예술가들의 모임을 지원하면서 문화예술을 육성하는 취지인데, 말하자면 시를 매개로 한 예술사업 프로젝트를 통해 시인들이 모인 거예요. 저, 서윤후, 구현우 시인이 모여서 ‘이서구’가 되었고 곁에서 조언을 해주던 유계영 시인까지 함께해서 총 4명이 활동했죠. 저는 정식명칭도 아니고 길기도 하지만 ‘이서구유’라고 부르는 게 더 마음에 들어요.

얼마나 활동했어요? 넷이서 재밌는 일을 많이 한 것 같던데.
작년 봄에 시작해서 겨울까지 했어요. 낭독회, 팟캐스트 방송, 무가지와 인터뷰집 제작과 배포 활동을 했죠. 처음엔 시를 중심으로 소규모 활동만을 기획했는데, 저희도 모르게 젊음의 열정이랄까(웃음) 그런 게 과다 투입됐고 덕분에 고생을 좀 했어요. 그걸 다른 분도 느꼈는지 꽤 좋아해주었어요.

 

“작가들의 작품, 위로가 돼”

문예지에 꾸준히 시를 발표하는 걸로 알아요. 첫 시집 계획도 있을 것 같은데.
우선은 시집이 내년에 나올 걸 예상하고 시를 쓰고는 있어요. 원고를 묶고 수정 작업하고 출판사에 다시 보내는 과정이에요. 시를 모아서 읽어보고 처음 드는 생각이 ‘아, 내가 코너에 몰렸었구나, 지금도 그렇구나. 앞으로도 그러겠구나.’ 였어요.

코너에 몰렸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글쓰기가 그렇다는 건지, 시 안에서 상황이 그렇다는 건지.
글쓰기 자체도 그래요. 원고를 읽었을 때 도망치고 있다는 느낌, 관통하는 동시에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 확실한 건 제 시는 특정한 의미나 사회적 의미, 역할에 중점을 두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걸 쓰려고 해도 목표한 의미망에서 벗어나거나 미끄러지고요. 목표점이 뚜렷하면 범주화하기 쉽고 그만큼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과 해석방향도 명확해지죠. 그러나 그러한 글쓰기는 제 취향이나 성질에는 맞지 않아요. 그래서 좀 어려움을 느껴요. 소위 학교에서 배우는 문학의 역할에는 사회 균열을 포착하고 다른 가능성을 보고 현실을 비판하는 등 여러 기능들이 중심에 있잖아요? 그런데 제 시나 제가 좋아하는 시들은 그 우열관계가 역전되어있는 사례가 많아요.

역전이라면 어떤.
교과서에는 ‘시에서 이 단어는 무슨 뜻이고, 실제로 일제 강점기에는 어땠다’ 하며 시나 시인의 삶에 직접 연결을 시키죠. 언어를 매개로한 시를 통해 현실이 비춰지고 그걸 보는 우리에게 각인되는 것이죠. 문학적 공간에 따라 현실을 다르게 재편한다는 느낌이에요. 시가 반대로 현실을 실험하는 것 같다는 거죠. 관계가 역전된 느낌. 그게 저한테 강하게 와 닿았어요. 문학과 현실은 상호적인데 저한테 와 닿은 관계는 문학이 현실을 도모하고 기획하고 좀더 교란시키는 거죠. 제게는 문학이 좀더 우위에 있는 것 같아요. 정확히 말해서 결국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거죠.

 

  ▶ 이설빈 시인

그렇군요. 시 쓸 때 어떤 스타일인지 궁금해졌어요. 시 한 편을 오래 묵혔다가 쓰는지, 한 번에 써내려 가는지.
때마다, 시마다 달라요. 어떤 시는 금방 써서 발표하기도 하고, 어떤 시는 쓰고 나서도 발표하기까지 정말 오래 걸리기도 하고.

완성하는 데 가장 오래 걸린 작품은 뭔가요? 얼마나 작업했는지.
<13월에 입>이라는 시인데 발표하기까지 한 3년 정도 걸렸어요. 발표 한 뒤로 지금까지 계속 수정 중이에요. 어떤 시인지 제가 말하는 대로 읽히면 안 될 텐데.(웃음) 간단히 설명하자면, 사실 개인과 공동체의 엄격한 분리는 불가능 하듯이 개인의 기억과 공동체의 기억이 온전히 개별적으로 존재하진 않죠. 그게 서로 엮이고 엉키는 지점들을 파고들면서 좀 많이 괴로웠던 기억이 있어요. 시작메모는 2014년 여름이고, 작년에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했을 때 처음으로 저만의 공간을 갖게 되어 본격적으로 다시 써본 것 같아요. 집요하게 파고들었는데 고착이 안 돼요. 정립도 안 되고. 이대로 남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네가 남겨둔 음악을 듣다 나는 엎드려 잠들고
누군가 등 두드려 깨어보면 모두들
내 꿈을 필기하고 있었다
칠판 가득 문드러지는

 

      잠든 입술의 고요한 눈금들 움직이며
        잠긴 서랍에선 연필 구르는 소리
                   찬물 속의

 

빈 새장의 나무막대는
햇빛을 휘감고 햇빛 속에
지워져가고, 더듬으면 기억의 유리막대
휘저으면 휘젓는 대로 흥얼흥얼 따라나서는
물결들, 엎드려있던 상처들이 손잡고 떠올랐지만

 

                                      여긴
                                   어디지?
                          눈 뜨지 마 아직
                           입 벌릴 어둠도
                              없어 아직도
                       아물지 않은 분수야
           허옇게 치솟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한 줄기 분노가 우리를 눈감을 때까지
나는 쓰러진 화환, 축축한 스펀지로 연명했다
빛나는 컴퍼스 다리가 징검징검
생의 좌표를 찍어 누를 때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바늘구멍으로 한 톨의 진실을 밀고
당기는데, 햇빛은 웅덩이마다 무지갯빛
기름띠를 두르고 둥둥
북을 치고 있었다 그때
나는 현재에 가장 희박한 부피
뒷면 빼곡히 비치는 소실의 한 대목만을 노려보았다

 

                                   움직이지 마
                                   조심해 빛을
                              깨뜨렸어 누군가
                              건너가야 해 우리
                             말곤 없어 벌어진
                 입술 갈라진 몸들에 발을 넣고
                하나의 뿌리로 건너가는 목소리

 

                             여긴
                            누구지?
                    (메아리 없는 목소리)
                    아직도 손 뻗으면
                          휘어드는

 

                   우리는 처음에
                     굴절이었다
                 수면으로 떨어지는
        물방울과 다시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한 꺼풀의 수면에서
                     마주친다는

 

                   파문이었다
            내게서 피어나는 것은
       너에게서 구겨져있던 것들이었다

 

흐린 페트병 같은
창밖으로 나는 눈을 틔운다 몇 마디
재채기가 되어 몸 밖으로 뛰쳐나온다
너무 작은 화분의 너무 빽빽한 뿌리처럼
                         숨 가쁘게 문
                          열어보면

 

너는 없고 또 다시
내 몸에서 갈라지는 목소리, 메마른
흙더미 속을 헤집는 혀처럼 나는 네 입술의 문턱에서
                  폭설로 넘어지고 폭설로
                                 넘어서고 있었다

 

<13월의 입> 전문


그렇군요. 반대로 가장 빠르게 완성한 시도 궁금해요.
<의자 밀어주던 사람>인데요. 이 시는 연애가 끝나고 나서 하루아침에 썼어요. 메모해 둔 단상은 있는데 나한테 적합하지 않다, 했던 문장이어서 어떻게 써야 할 지 몰랐었는데 빨리 완성한 편이죠. 연애 관계의 끝맺음은 기존의 나라는 사람에 대한 건너감인 것 같아요.

건너감이요?
나에서 다른 나로 넘어가는 느낌, 나이테 하나 그려진 느낌이요. 그런 게 일방향이 아니라 정방위로 뻗어가는 느낌이랄까요. 그 느낌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싶었는데 관계가 끝난 나머지 허무하게, 순식간에 깨달은 것 같아요. 그때 그 정서를.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이야기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파동이 있고, 메아리가 치잖아요. 몸이 기억하는 시간성에 대해 쓴 시에요. 단순히 연애라기보다 나와 타인의 매개에 관한 거예요. 지금 보면 조금 아쉬운데 단번에 해치워서 시원한 기분이에요.


그 사람 떠나고, 나 혼자 떠밀렸습니다. 그 의자 기
울고, 나 혼자 쏟아졌습니다. 제각각 맨발로, 나는 나에
게 도착했습니다. 막다른 다리 위에서, 나는 나를 굽어
보았습니다. 물에 잠기는 물결과 떠오르는 물결 사이,
몸 안 가득 투명한 나뭇결, 불어나는 내가 보이고……
그게 어떻게 나인 줄 아는 지, 영영 모르겠고요.

내가 체온계를 깨물어 버리고부터, 그의 입술은 더욱
 얇아졌습니다. 어제는 조급하게 북북북, 몇 개의 동심
원을 그리더니 눈앞에 들이밀고 톡톡, 뭐가 보이느냐고
 묻는 겁니다. 그야…… 종이의 결이 보이죠. 그는 돋보
기 눈먼 불빛으로 내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는 타버렸지요. 한참을 하얗게 타올랐지요. 내가 완
전히 뼛가루가 되자 그는 한 잔의 물과 함께 나를 삼켰
습니다.

다시, 다리 위로 돌아옵니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나의 다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
른발, 붓고 가라앉고 붓고 가라앉는 창밖의 능선만큼
이나 평화롭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선잠처럼 뭉툭
 끊긴 다리 위, 내 입 없는 운전수는 나를 번쩍 안아서 내
려줍니다. 그리고 떠나며 한 마디, 아무 데서나 미치지
마요.

한참을 울렁이다, 줄줄 새어나가려는 그 말을, 나는
 양손으로 받아봅니다. 아무에게나 비치지 마요. 잠잠해
질 때까지,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다리 아래 드리워진
그늘 속으로 자갈의 앙다문 입술, 풀잎의 지느러미,
물빛의 박동…… 등등이 선명합니다. 나는 사로잡혀
일렁입니다. 발소리 없는 굴렁쇠소리…… 가까워 옵니다.
어떤 서늘한 발 하나, 내 뒤통수를 밟고 갑니다. 둘, 넷, 후드득……
나를 건너, 갑니다.

<의자 밀어주던 사람> 전문

 

작가님 시에서 항상 끌고 가는 게 있나요?
시를 한 데 모아서 읽어 봤을 때 드는 감정은 권태와 피로감이었어요. 제 시지만 읽고 바로 잤어요. 되게 재미없다, 이러고.(웃음) 그리고 만약 권태와 피로에 대해 쓰는 사람이 있다면 찾아서 읽어요. 친구가 말하더라고요. 네 시는 완전히 힘을 다 소진하고 쓰러졌다가 일어서려고 하는데 부러진 느낌이라고. 기승전결이 아니라 결부터 시작해서 읽는 느낌이라 괴로웠다고. 시에서 괴로운 정서가 느껴지고요. 제가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나 봐요.

요즘 시도 그래요?
요즘에는 표현이 조금 위악적이고 악랄하고 신랄해지려고 해요. 근데 그게 너무 별로예요.

신랄해지면 안 돼요?
아, 셀프 저주하는 듯한 느낌이라.

그럼 위험할 것 같네요.
경계해야 해요. 근본 없는 위선도 위약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표현을 위해서라면 더 갈수도 있겠죠. 위선도 위악도 결국엔 거짓이라는 자각을 전제로 하는 거니까요. 경계심도 사실 방심을 위한 건가 싶기도 하고. 갑자기, 시는 허구 속의 허구라는 이성복 시인의 말이 떠오르네요. 그러니까, 거짓이라도 좋으니까 조금 더 쓰는 몸에 가깝고 싶어요. 쓰는 몸, 쓰는 습관, 쓰는 고통에 익숙해졌으면 좋겠어요. 요즘 몸 관리를 소홀히 했더니 쓰는 체력도 조금 떨어진 것 같아요.(웃음)
 
시인들에게 ‘시는 쓸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작가님은 어때요?
글을 세 달 가까이 못 쓴 적이 있어요. 한동안 온몸에 반창고를 하고 다녔죠. 바로 피부로 드러나거든요. 어떻게든 뭔가 조금이라도 쓰거나 그런 활동을 해야지 안 그러면 안절부절 못해요. 몸을 긁거나 비틀거나 하더라고요. 괴롭죠. ‘안 쓴다’는 선택이 ‘못 쓰고 있다’로 이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있어요. 가끔 쓸 것도 없는데 억지로 쓰는 것 같을 때는 재능을 의심하기도 해요. 시가 공부한다고 해서 잘 써지는 것도 아니고. 목표가 있다고 해서 잘 써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그럼 잘 쓰는 건 뭐지? 사는 건 뭐지? 의심도 들고.(웃음)

창작 활동할 때 작가님께 위로가 되는 것들이 궁금해요.
양선형 소설가가 저와 같은 해에 등단했거든요. 얼마 전에 그 친구 소설책이 나왔어요. 읽는데 정신적으로 되게 격려 받는 느낌이랄까? 용감하게 어떤 지점을 돌파하는 느낌이 들었고. 각자의 길이 다르지만, 주어진 에너지를 총량화 할 수 있고 집중할 수 있다면 그런 면에서 앞서있는 사람 많잖아요. 어떤 예술가이든. 이미 앞질러 가있거나 멀리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빛을 받으면 참 든든해요. 그냥 그 사람들이 쓴 작품을 옆에 두어도 위로가 돼요.

 

  ▶ 이설빈 시인

자극 받는 것들은요?
특정적인 영감은 없고 섞여 들어가는 것 같아요. 글 쓰는 몸이 갖춰지면 쓰니까요. 인상에 남은 것들을 동원해서 쓰는 거죠. 저는 시를 쓰기 시작하면 AR, 그러니까 증강현실의 상태로 돌입하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누군가 카페에 앉아 정면의 유리창을 바라보면 창밖 풍경과 내 뒤의 커피머신이 뒤섞여 보이죠. 거울이나 맨 눈으로는 불가능한 시선이에요. 그런데 시를 쓸 때는, 그 불가능한 게 불가능을 앞서서, 결국엔 쓰면서 보여요. 그럴 때 뭔가를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뭔가와 함께 새로 재편되는 느낌.

 

"시 쓰는 몸으로 자주 있었으면"

최근에 겪은 일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기억은 뭔가요?
아주 어둑하고 안개가 잔뜩 낀 산장의 다락방이었는데. 8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침낭에 누워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웃고 떠들고 토론하는 거 보니까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문학 이야기를 했나 봐요. 그러다 갑자기 다락방 문이 열리면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얘는 왜 이렇게 잠꼬대가 심해?’ 제가 말했어요. “아, 그건 나를 설득하려고.” 그러고 깨어났어요. 어머니가 실제로 한 말에 제가 대답한 거죠. 상황이 웃겼는데 또 짜증났어요. 꿈에서까지 시달리네, 싶어서. 옛날에는 꿈이 이미지로 진행되었는데 최근 몇 년은 주로 말로 꿔요. 말로 인화되는 꿈. 잠꼬대가 더 또렷해지고 있어요. 진짜 말하듯이.(웃음)

내 시가 어떻게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지.
이서구 활동하면서 느꼈어요. 힘든 사람에게 ‘힘내’, ‘파이팅’한다거나 내 경험을 말하는 것보다 곁에 있어주는 게 힘이 된다는 걸요. 말 못할 상황에 처한 친구에게 '우리 집에 놀러와'하는 거. 초대하거나 초대 받아서 옆에 있어주거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 들려주거나, 친구가 중얼거리면 같은 층위로 중얼거리는 거요. 제 시가 만약 어떤 기능이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내년에 시집을 내면 좋겠어요. 소시민적 삶도 잘 영위했으면 하고.(웃음) 조금 덜 버겁게 지냈으면 해요. 쉽게, 날(日, 生)로 잘 쓰고 싶어요. 글 쓰는 내가 좀 어려워요. 제 스스로가 적응됐으면 하고. 시 쓰는 몸으로 자주 있고 싶고. 일단 좋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


• 이설빈
1989년 서울에서 출생. 2014년《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했다.

진정은  biz99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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